10 인간의 본성

2020.03.03 14:44

박제윤 조회 수:231

10. 인간의 본성

Human Nature

 

 

에두아르 마셰리(Edouard Machery) / 김원 역

 

 

전통적인 “인간 본성의 본질주의자 관념(notion)”에 따르면, 모든 인간이 일련의 속성들을 공통으로 가지는데, 그 속성들은 개별적으로 인간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면서 합쳐서는 인간이 될 충분조건이다. 그러나 생물학자와 생물철학자의 예리한 비판(Hull 1986; Ghiselin 1997; Kitcher 1999)에 따르면, 그러한 본질주의자 개념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철학 내에 나타났다. 이와 더불어 인간 본성이란 개념을 유전학과 진화생물학에서 이루어진 과학의 진보와 궤를 맞추어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배경에서 앞으로 등장할 “후속 개념”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적합성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그것은 본질주의자 개념(Machery 2008; Griffiths 2009, 2011; Stotz 2010; Samuels 2012; Ramsey 2013)에 대해 제기하는 여러 반론에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그것은 실질적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 개념은 인간 본성에 관한 전통의 본질주의자 개념이 충족시킬 것으로 보이는 여러 기능을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Samuels 2012). 이전의 여러 연구(Machery 2008; Machery and Barrett 2006)에서 나는 “인간 본성의 법칙적 개념(nomological notion)”이 헐(David Hull)이 제기한 반론과 다른 학자들의 반론에 견딘다고 주장했다. 이 장의 목표는 인간 본성의 법칙적 개념이 본질주의자 개념에 대한 만족할 만한 후속 개념임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것은 유전학과 진화생물학에서 이루어진 진보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정확히 인간 본성이라는 개념이 충족해야 할 기능들을 충족하는 반면, 충족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내가 주장할 기능은 충족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아주 유사한 변증법적 구도는 Samuels 2012 참조.)

이 장의 진행 방식은 이렇다. 나는 2절에서 인간 본성의 법칙적 개념을 소개할 것이다. 3절에서는 인간 본성의 본질주의자 개념이 충족해야 한다고 생각되었던 다섯 가지 기능을 서술한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인간 본성의 개념이 충족해야 할 가치가 있는 기능들을 나의 법칙적 개념이 충족하는지를 검토한다. 4절부터는 인간 본성의 법칙적 개념이 인간임의 특성을 규명하기에, 그리고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시켜주기에 유용한지를 논한다. 그리고 그런 법칙적 개념이 인간의 본성을 끌어들여 인간 고유의 특성들을 설명하는 일에 합리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 또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지를 검토한다. 끝으로 9절에서는 인간 본성을 통해 인간이 지닌 유연성의 테두리를 규정할 수 있는지, 또 어떤 의미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한다.

왜 후속 개념을 개발하는가?

 

인간 본성의 본질주의자 개념에 대해 잘 알려진 여러 반론을 여기서 되풀이해서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후속 개념을 개발하려는지 따져볼 가치는 있다. 왜 헐(Hull 1986) 같은 논자들이 제안하듯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개념을 과학에서 단순히 제거해버리지 않는 것인가? 인간 본성에 관한 후속 개념을 개발하려는 이유는 적어도 세 가지이다.

첫째, 인간 본성의 개념은 행동과학의 몇몇 영향력 있고 성공적인 연구 프로그램에 활용된다. 그런 연구 프로그램에는, 여러 언어의 다양성에 기초하는 (그 무엇이든) 보편성을 끌어내려는 생성언어학(generative linguistics)(Chomsky and Foucault 2006), 발달심리학의 생득주의 연구 프로그램(Carey 2009), 진화론적 경향을 띤 여러 비교심리학자의 작업 (Frans de Waal 2009), 그리고 진화적 행동과학의 많은 연구(Tooby and Cosmides 1990; Richerson and Boyd 2005) 등이 포함된다. 몇 사람의 말을 인용해보자. 심리학자 블룸(Paul Bloom)은 공정성(fairness)이 인간 본성의 일부라고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우리가 모든 연령[의 인간 행동]에서 볼 수 있는 것은 … 평등을 향한 일반적 편향성이다. 아이들은 평등을 기대하는데, 그들은 가진 것을 동등하게 나누는 사람을 좋아하고, 스스로 가진 것을 공평하게 나누려는 뚜렷한 성향을 보여준다. 이것은 인간 본성에 관한 일부 견해, 즉 우리가 모종의 공정성을 본능으로 가지고 태어났다는 견해, 즉 우리가 타고난 평등주의자라는 견해와 잘 맞아떨어진다(Bloom 2013, pp.65-66).

 

마찬가지로, 진화생물학자이면서 인지과학자인 피치(Tecumseh Fitch)에 따르면, 언어학적 보편항을 찾아내려는 생성언어학의 시도는 인간 본성에 관한 이론을 개발하려는 일과 관련된다고 지적한다. “18세기 여러 철학자는 이처럼 언어에 널리 공유된 기반을 이해하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인간 본성을 이해하려는 데에 핵심이라고 생각했다.”(Fitch 2011, p.378)

진화생물학자이면서 인류학자인 두 사람, 리처슨(Peter Richerson)과 보이드(Robert Boyd)는 자신들의 전체 연구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일반적인 학습의 경우에서, 개인들은 자신이 모방 과정을 통해 얻은 [획득 형질인] L의 값이 지닌 중요성의 무게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최선이라고 평가되는 값과 비교하여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경험에 의지하는 것일까, 아니면 모방에 의지하는 것일까? 편향된 전달(biased transmission)의 경우에, 개인들은 성공에 관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들이 부자를 모방하는 것인가? … 궁극적으로 이런 것들이 인간의 본성에 관한 물음이다. 그 답은 우리 종의 문화적 진화와 유전적 진화의 상호작용을 관장하는 긴 호흡의 과정에서 생각해보아야만 한다(Richerson and Boyd 2005, pp.392-393. 강조는 내가 했다).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된 논문에서, 경제학자 긴티스(Herbert Gintis)는 인간들의 협동에 대한 최근의 모형화 작업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표준적 견해에서 보자면, 인간 본성에는 친숙한 작은 범위의 사람들과 도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사적 측면이 있으며, 각자 이기적 극대화를 위해 행동하는 공적 측면도 있다. 헤르만 등(Herrmann et al. 2008)의 제안에 따르면, 대부분 개인은, 자기와 무관한 개인과 가장 비정한 상호작용에서 드러날 수 있을, 행동과 관습의 깊은 저수지를 갖는다. 도덕적 성향을 담은 그 저수지에는, 사회적 행동의 규범을 내면화할 수 있을 인간 특유의 역량과 함께, 인간 종의 진화 과정에서 생겨난 생득적 친사회성이 담겨 있다. 이런 두 가지 역량은 개인에게 자신의 물질적 이익과 상충하는 상황에서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성향을 이미 부여하였다(Gintis 2008, p.1345).

 

인간 본성이라는 개념은 그것을 포함하는 여러 이론의 성공적 자질로부터 그 자양분을 얻는다. 그렇지만 그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아서, 그리고 과학자들은 이 개념을 무슨 뜻으로 사용하는지 설명하려 거의 시도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철학자들이 그것을 해명하는 작업을 맡아야 한다.

 
[이하생략]

댓글 0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1 4 신경철학 박제윤 2020.03.03 53120
50 3 동물 진화와 경험의 기원 박제윤 2020.03.03 38060
49 13 철학자들은 생물학으로부터 어떻게 배우는가?: 환원주의와 반환원주의 “교훈” 박제윤 2020.03.03 33911
48 1. 다윈과 본질주의의 뒤늦은 종언 박제윤 2020.03.03 32671
47 뇌신경철학연구회의 만남의 장 OPEN [1] 사무국 2019.04.11 15570
46 2 철학으로서 다윈주의, 만능산을 가질 수 있는가? 박제윤 2020.03.03 784
45 6 정보적 목적의미론을 위한 방법론적 논증 박제윤 2020.03.03 763
44 5 목적의미론 박제윤 2020.03.03 348
43 Sex On behalf of Big Sexual category ykebytub 2023.09.13 281
42 2021년 10월 21일 발표-데넷의 수사학 file 박제윤 2021.10.22 232
» 10 인간의 본성 박제윤 2020.03.03 231
40 과학기술과 미래철학 박제윤 2019.04.22 211
39 2021년 1월 29일 모임: 셀라스의 자연주의 - 브라시에의 <유명론, 자연주의, 유물론>을 중심으로 file 박제윤 2021.02.04 205
38 뇌신경철학연구회의 첫 출판물 file 박제윤 2020.03.03 201
37 뇌신경철학연구회 회원 박제윤 2020.02.21 198
파일첨부시 용량은 100MB로 제한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