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동물 진화와 경험의 기원

2020.03.03 14:21

박제윤 조회 수:38037

3. 동물 진화와 경험의 기원

(Animal Evolution and the Origin of Experience)

 

피터 갓프리-스미스(Peter Godfrey-Smith) / 이동훈 역

 

 

서문

 

우리가 어떻게 주관적 경험(subjective experience)의 가장 단순하고 가장 기초적인 형태를 이해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살아있는 유기체 중 하나인 무엇이라고 느낄 수 있을 그러한 유기체 집합은 무엇일까? 언제부터 이런 현상이 시작되었으며, 그 가장 초기 형태는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 분명히 이러한 질문들은 본래 호기심을 자극하며, 적어도 두 가지 방면에서 중요하다. 여기에서 논의과정은 심리철학이란 다른 영역에 도움줄 수 있어야 한다. 심리철학은 심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이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관한 가장 기본적 논의를 포함한다. 이 점에 대해 아마도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나의 질문에 대답하려는 노력은 심신문제 그 자체에 직접 도움주지 못할 수 있지만, 더욱 근본적 질문을 해결해줌으로써 (만약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오히려 도움줄 수 있다. 그렇지만, 아마도 우리가 더 단순한 형태와 더 복잡한 형태 사이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이것은 주관적 경험이 어떻게 물질적 기반을 가지는지를 우리가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내 생각에, 최종 이론의 모습은, 물질적인 것을 생명체에 연관시키는, 생명체를 인지에 연관시키는, 그리고 주관적 경험을 (살아있는 시스템이 관여하는) 일종의 인지작용에 연관시키는 어떤 것이다. 이 장과 짝을 이루는 (곧 나올) 논문에서, 나는 이러한 관계들의 첫째 연관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이 장에서 나는 (동물 생명체animal life의 진화가 보여주는) 후자의 연관들과, 동물 진화의 단계들이 어떻게 주관적 경험과 연관될 수 있었을지 논의하겠다.

이러한 쟁점들은 또한 더욱 실천적인 방식으로 논의될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사육되는 동물들의 취급, 실험, 그리고 여타의 것들에 관한 윤리적 질문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다양한 종의 동물들을 취급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주관적 경험, 특히 괴로움에 관한 질문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하나의 그럴듯한 관점에 따르면, 우리가 전혀 주관적 경험을 갖지 못하는 유기체를 다룬다면, 그러한 유기체를 다루는 방식에서 윤리적 우려는 거의 없다. 혹은 어쩌면 약간의 우려가 있더라도, 그런 우려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동물을 다룰 때 적용되는 것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아마도 환경 윤리의 질문이 여전히 적용될 수 있다. 주관적 경험, 특히 부정적인 주관적 경험(고통과 괴로움)을 가지는 동물들에 대해, 이것(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 동물을 다루는 방식을 결정하는 데에 반드시 반영되어야만 한다는 초기의 강력한 사례가 있다. 이런 논의들 안에서, 중요한 질문은 진화 그 자체가 아니라, 현존하는 동물들 가운데 주관적 경험의 분포에 관한 것이다. 물고기나 게(crab)가 주관적 경험을 가지는가? 진화에 관한 질문들은 이러한 것들과 연관된다.

다음 절은 이 장의 주제들을 더욱 자세하게 설정하고 동물 생명체 이전의 진화 모습을 그려내려 한다. 그런 후 나는, 주관적 경험의 진화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 단계들에 집중하여, 동물의 초기 역사를 살펴보겠다. 마지막 절은 진화의 역사와, 최근 신경생물학 및 심리철학의 연구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겠다.

 

 

주관적 경험과 초기 진화

 

나는 우리의 목표가 주관적 경험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 목표가 의식에 대한 질문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요즘 “의식”이라는 단어는 주관적 경험의 모든 종류를 포함하는 식으로 다방 면에 걸쳐 널리 쓰인다. 그렇다면 어떤 것들이 다른 것들에 비해 더 복잡하다는 식으로, 의식의 여러 다른 종류들 사이에 구별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여러 문제를 설정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더라도, 이것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980년대 자주 등장했던, 이러한 이슈들을 조명해주는 좀 더 초기 방식은 심리철학의 주요 문제를 세 가지, 즉 “감각질(qualia)”, “의식(consciousness)”, “지향성(혹은 의도, intentionality)” 등으로 구분하는 것이었다. “감각질”의 문제는 정신의 일인칭 느낌(feel)을 설명하는 문제로 여겨졌고, “지향성”은 의미론적 내용 혹은 “~에 관함”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였으며, 그리고 “의식”은 그것이 인지적이며 질적인(주관적 느낌) 측면 모두의 특별한 특징들을 가지는 복잡 미묘한 정신력(mentality)으로 보였다.

요즘에는 자주 “감각질”과 “의식”을 매한가지로 여기곤 하는데, 이는 어떤 것이 다른 것에 환원된다는 논증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려되는 현상이 하나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만일 무언가 자신을 하나의 시스템인 것처럼 느낀다면, 그 시스템은 의식이 있는 것이거나, 또는 어떤 종류 혹은 어느 정도의 의식을 갖는 것으로 얘기 된다(Nagel 1974). 나는 전자를 선호하며, 양자 사이의 차이가 언어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감각질”은 매우 매력적이지 않은 용어였지만, 이 단어는 어떤 유기체들이 겪고 있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구별되는, 경험의 매우 간단한 형태라는 생각에 꽤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예를 들어, 나는 오징어가 고통을 느끼는지 궁금해하지만, 그러나 그런 궁금은 오징어가 의식적 존재인지 아닌지에 관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록 철학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는 아니지만, “감각적인(sentient)”이 더 일반적 속성을 말해주는 더 나은 형용사이며, 일부 사람들은 그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은 아마도 의식이 매우 넓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할 것이고, 많은 이는 오징어가 고통을 느끼는지에 관한 문제가 오징어가 현상적으로 의식적인지에 관한 문제라고 말할 것이다.

이 장에서, “주관적 경험”이라는 문구는 “의식”이라는 문구보다 훨씬 넓은 의미로 사용될 것이다. 즉, 무언가 자신을 하나의 시스템인 것처럼 느낀다면, 그 시스템은 주관적 경험을 갖는다. (“감각질”이라는 표현에서 이끌어 온 의미 안에서) “감각질적인(Qualitative)”이라는 문구는 주관적으로 경험된 정신 상태의 느껴진 특징(the felt features of those mental states)에 대한 형용사로 사용될 것이다. “의식”은, 비록 이것이 최선의 이해라고 보기 어렵더라도, 미약한 주관적 경험을 넘어서는 무엇이며, 더욱 풍부하거나 더욱 복잡 미묘한 무엇이다. 그리고 몇 가지 다른 복잡 미묘한 종류들이 아마도 다른 장의 주제와 관련될 것이다. 나는 “인지적(cognitive)”이라는 용어를 유기체 내에서 일어나는 과정들, 이를테면 감각 입력을 다루고, 기억을 수립하고 접속하며, 행동을 조절하는 등등을 위해 넓게 사용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모든 과정에 대한 정보처리(information-processing) 혹은 계산적 관점(computational view)이 옳은 관점이라고 추정하지 않는다. 나는 행동 조절과 지성을 포함하는 정신적 측면을 위한 일반적 용어를 원한다.

다음 절은 동물생명체의 역사 일부를 다룰 것이다. 그보다 앞서 나는 동물 이전의 일부 진화적 환경을 서술할 것인데, 이는 특히 동물이 진화하기 이전 존재하던 풍부한 인지적 혹은 원형-인지적(proto-cognitive) 능력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각, 기억, 행동 조절 등의 초기 진화를 바라봄에 있어 심리철학 내의 기능주의(functionalism) 관점을 토대로 생명의 역사에 접근한다고 가정해보자. 기능주의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물리적 시스템에 심리적 속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모든 그런(행동 조절) 능력들은 동물이 가지기 전 이미 잘 진화되었다. 그리고 그중 몇 개는 단세포 유기체에서조차 꽤 고도로 발달된 형태를 보여주었는데, 원핵동물(prokaryotes, 박테리아 그리고 고세균)이 여기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는 그들의 환경 내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원하는 그리고 원하지 않는 물질들을 좇거나 이것들에 반응할 수 있다. 대장균(Escherichia coli) 박테리아는 일종의 단기기억을 통해 자체의 유영을 조절한다. 매순간 나아갈 때마다, 단일 박테리아는 현재 감각되는 물질들과 직전에 마주쳤던 물질들을 비교한다. 만약 지금 조건이 조금 전보다 더 좋아졌다면, 그 세포는 따라가던 이동선을 따라서 계속 진행한다. 만약 조건이 더 나빠진다면, 그 세포는 무작위로 “몸을 뒤집는다.” 이러한 시스템은 박테리아 행동의 평소 철학적 사례보다, 특별히 주자성(magnetotaxis)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특히 그 시스템이 입력과 출력 사이의 가장 단순한 관계를 넘어서는 무엇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현재 자극의 중요한 정도는 이전 단계에 달려있다.

박테리아는 원핵생물로서, 핵(nucleus)이 없는 세포이며, 다른 단세포 유기체들 이상의 내적 구조를 갖지 못한다. 동물 진화 이전의 중요 사건은 진핵세포(eukaryotic cell)의 진화이었으며, 그 세포는 더욱 크고 복잡하며, 그 초기 진화는 1.5억 년 전 하나의 원핵동물(박테리아)이 다른 원핵동물(고생물, archaean) 같은 것에 의해 삼켜져서 일어났다. 행동의 진화에서 특히 중요한 진핵세포의 한 가지 특징은 세포골격(cytoskeleton)이다. 이것은 그것의 움직임이 화학적으로 통제 가능한 섬유질들의 유사-골격 내적 집합(skeleton-like internal collection)이다. 특히, 그것은 수축할 수 있다. 이것이 세포의 전체 모양의 변화와 새로운 운동을 가능하게 해준다. 단세포 진핵생물은 빛의 방향을 감지하는 것과 같은, 감각의 풍부한 형태를 진화시켰다.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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