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성과 젠더에 대한 후기유전체학적 관점

2020.03.03 14:45

박제윤 조회 수:79

11. 성과 젠더에 대한 후기유전체학적 관점

A Postgenomic Perspective on Sex and Gender

 

 

존 뒤프레 John Dupré / 심지원 역

 

 

서론

 

젠더(gender)는 다채로운 철학 분야에서 핵심 개념으로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특징을 지닌 사회는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다른 역할, 권리, 책임 등을 부여하고, 이렇게 부여된 역할, 권리, 책임 등은 윤리학과 정치철학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남성과 여성의 이러한 차이에 대한 가정은 형이상학, 인식론, 과학뿐만 아니라 그 외의 분야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되어왔다. 이러한 주제를 페미니스트 철학(feminist philosophy)이 엄밀하게 포괄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스트 철학이 고립된 학문 분야는 아니며 오히려 앞서 언급한 모든 분야와 깊은 관련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성(sex)은 이러한 모든 분야에서 분명한 역할을 한다. 특히, 생식에서 성에 따른 차별화된 역할은 일반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역할의 차이를 정당화하는 데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일반적인 페미니스트와 특히 페미니스트 철학자들은 문제를 제기한다. 그렇지만 앞선 가정은 “표면적 성 차이”라고 불리는 문제에 불과하다. 1960년대와 그 이후 “제2의 물결” 페미니스트의 핵심 논제는 남성과 여성의 차별화된 사회적 역할과 지위가 우연적이고 가변적이라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사회 혹은 서로 다른 시대의 사회마다 젠더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규정지어왔다. 표면적 성, 즉 일반적으로 쉽게 확인 가능한 일련의 생물학적 차이는 젠더 역할을 부여하는 기반이었으나, 이러한 젠더 역할은 결코 성에 의해 결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관점은 많은 젠더의 차이가 본성적이며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근본적인 성 차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오래도록 이어져온 전통적인 주장에 반대했다. 이러한 후자의 관점에서 젠더란 불분명한 (“난해한”) 성 차이를 표현하는 말처럼 보인다.

반세기 전 (예를 들어, Rubin 1975; Unger 1979; Fausto-Sterling 1985; 성과 젠더의 차이를 소개한 Stoller 1968 같은)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성과 젠더의 차이를 확립하기 위해서, 정확히는 남자와 여자의 성의 생물학적 차이와 흔히들 본성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였던 문화적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예를 들어, Judith Butler 1990 같은 근래의 저명한 비평가들을 포함한)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차이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다. 그 논란의 주된 관심사는 그러한 차이가 젠더를 마치 성과 구분되는 실제적인 어떤 것으로 구체화하려는 경향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젠더라는 개념은 젠더와 인종 사이의, 그리고 민족, 계층, 그 외의 다른 중요한 사회집단 사이의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은폐시킬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일반적으로 여성 개인의 독특함과 다양성을 모호하게 만든다. 이 장 마지막에서야 명확해지겠지만 나도 젠더에 대한 이러한 우려에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개념은 인간이 상이하게 발달하는 데 대한 생물학적 설명을 분석하기 위해서, 특히 내가 이 장에서 의도한 바처럼 인간이 상이하게 발달하는 경우에 내적 영향과 외적 영향 사이의 상호작용을 평가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가치가 있다. 만약 결국 생물학과 문화 사이의 상호작용이 너무 복잡해서 성과 젠더를 구별하는 것이 어떤 궁극적인 존재론적 의미도 갖지 못한다고 밝혀진다면,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딛고 올라왔지만 바로 멀리 차버릴 수 있는 사다리처럼 보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하는 이유를 명확히 해야 한다.

어쨌든 얼핏 보면 성과 젠더의 차이는 직관적으로 명확해 보인다. 성은 생식생리학에 기반은 둔 생물학적 차이이다. 대부분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단어가 매우 중요하지만) 생식생리학적 특성을 가지며, 나중에 남성과 여성을 명확하게 구분시켜줄 여성의 가슴이나 남성의 수염 등과 같은 이차 성징이 나타난다. 반면에 젠더는 특정 사회에서 한 성이나 또 다른 성을 가진 성원의 성적 특징이 되는 행동방식을 가리킨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옷을 입지만, 모든 사회에서 그런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성별이 구분되는 곳에서 남성과 여성이 똑같은 옷을 입는 것도 아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옷을 입는 것은 젠더의 한 측면일 뿐이다. 젠더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젠더가 분업과 상호작용하는 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모든 사회는 각자에게 각기 다른 임무를 할당하며, 아담 스미스(Adam Smith) 같은 사상가들은 인간 사회에서 분업은 경제적 성공의 기초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모든 혹은 거의 모든 사회에서 이러한 분업은 어느 정도 젠더에 따라 나뉜다. 어떤 일은 남성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지며, 어떤 일은 여성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일의 할당에 따라 지위, 임금, 책임 등과 같은 일련의 차이들이 발생한다.

하지만 내가 이 장에서 추구하는 바는 젠더의 차이가 미치는 사회적, 정치적 파문에 대해 탐구하는 포괄적이고 중요한 작업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장에서는 성과 젠더 차이의 생물학적 기초와 궁극적인 존재론적 기초를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가 이 책의 핵심인 생물철학(biophilosphy)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부분이며, 동시에 이 장에서 젠더가 궁극적으로 난해한 성의 표현인지 아니면 오히려 페미니스트들이 가정하는 바와 같이 사회 조직에 따라 정치적으로 변형 가능한 특성인지에 대한 공적 논쟁이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이제 지난 반세기 동안 발전해온 생물학에 힘입어 더 이상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자의 관점에서 생물학적 결정론(biological determinism)은 더 이상 과학적으로 옹호할 수 없다.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근거 그리고 인간과 사회의 철학적 이해에 대한 생물학적 결정론의 영향에 대한 탐구는 내가 주장하는 생명철학(biophilosophy)의 역할을 위한 패러다임을 제시해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물학적 결정론의 영향은 성과 젠더에 대한 이해를 위해 결코 더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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