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철학으로서 다윈주의, 만능산을 가질 수 있는가?

2020.03.03 14:15

박제윤 조회 수:777

2. 철학으로서 다윈주의, 만능산을 가질 수 있는가?

Darwinism as Philosophy,

Can the Universal Acid Be Contained?

 

 

알렉산더 로젠버그 Alexander Rosenberg / 엄준호 역

 

 

과학사에 하나의 광범위한 패턴이 있다. 수학을 포함하여, 여러 개별 과학들은 철학의 한 분과학문으로 혹은 적어도 철학자들의 관심 분야 중 한 분과학문으로 시작되었다. 수학은 처음에 주로 공간을 다루는 과학이었으며, 플라톤과 유클리드 시기에 철학에서 분리되었다. 물리학은 갈릴레이부터 뉴턴에 이르는 시기에, 화학은 보일부터 라부아지에와 같은 인물들이 살았던 시대에 일어났던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생물학은 “풀잎의 뉴턴”이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을 출간하려 애쓰던 1859년부터 철학에서 분리되었다.

그렇게 여러 개별 학문이 철학에서 분리되면서, 이들 분야에서 답할 필요가 없거나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철학에 남겨졌다. “한낱” 철학에 귀속되긴 했지만 사실 이 질문들은 이전에 개별 학문에 의해 설명되어야 할 것처럼 보였던 것들이다. 예를 들어, 수학자들은 “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또 물리학자들은 대부분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을 피한다. 철학에는 개별 과학들이 아직 답할 수 없거나 앞으로도 결코 답할 수 없는 또는 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들로 넘쳐난다. 더구나 철학에는 이러한 질문들 외에도 왜 개별 과학들이 이러한 질문들에 답할 수 없거나 답할 필요가 없는지에 관한 또 다른 차원의 질문들이 있다.

그런데 과학사에서 보여주는 이러한 패턴은 마침내 다윈에 의해 무너졌다. 철학에 질문을 남기는 대신, 과학 특히 생물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이래 철학의 고유 영역이었던 질문들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생물학이 철학의 질문들을 다루고 답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설득되기까지 생물학자와 철학자들 간의 1세기 이상에 걸친 긴 논쟁이 있어야 했다. 형이상학, 인식론, 심리철학, 언어철학, 도덕철학 등의 분야에서 “자연주의(naturalism)”가 주목받게 된 것은 이러한 논쟁을 통한 성취의 증거이다. 오늘날 철학의 “자연주의”는 주로 다윈의 통찰력에 의해 견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윈 이론은 삶의 의도(목적(purpose)), 인간 존재의 의미, 인간 종의 역사, 자유의지, 개인의 정체성 등등과 관련하여 철학자들은 물론 비철학자들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해주기에 특별히 탁월하다. 그러나 이 장에서 나는 다윈 이론이 가장 큰 영향을 준 두 가지 중요 문제, 즉 도덕철학 및 메타윤리학(metaethics), 그리고 심리철학(philosophy of psychology)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이 두 분야에서 다윈 이론의 영향은 그 이론을 받아들인 대부분 자연주의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혁명적이다. 다윈 이론은 도덕가치 문제의 규범적 질문들에 대한 대부분의 대답을 무력화시켰다. 다윈 이론은 사고의 본성, 언어의 의미, 합리적 논증 가능성 등등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물론 다윈 이론 그 자체만으로 그것이 가능하지는 않으며, 자연주의자에게 해가 되지 않는 몇 가지 보조 가정을 필요로 한다. 첫째 가정은 과학이 실재의 본성에 이르는 최상의 안내자라는 것이다. 둘째 가정은 과학적 방법들이 지식을 보증해줄 가장 합리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철학적 이론들이 자연과학에서 가장 잘 확립된 이론들과 양립할 필요가 있다는 보조 가정이다. 이러한 보조 가정 없이 자연주의는, 특정 영역에서 직관, 상식 또는 계시가 더 나은 진리로 우리를 인도해준다는 일부의 주장을 배척할 수 없다.

이 장의 첫째 절은 다윈 이론이 생물학을 넘어 왜 그토록 큰 반향을 일으켰는지를 설명하겠다. 둘째 절에서 다윈 이론의 도덕철학에 대한 심대한 영향을 서술하겠다. 셋째 절에서는 심/신 문제(mind/body problem)에 대한 다윈의 해결책이 가장 급진적인 심리철학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들을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보여주겠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는 다윈주의가 자연주의자들에게 던진 근본적이지만 해결되지 않은 정당화 문제를 언급하겠다.

한편으로 이 장의 도처에서 독자들은 다니엘 데닛(Daniel Dennett)의 연구가 얼마나 거대한지를 알 수 있다. 데닛은 분명 가장 일찍, 가장 지속적으로, 그리고 가장 큰 영향력으로, 다윈을 철학의 중심에 올려놓은 우리 시대의 철학자이다. 그러나 이 장에서는 그가 우리 주제와 관련한 다윈의 혁명적 영향을 충분히 추적하지 못했다는 점을 오직 논의하겠다.

 

눈먼 변이와 환경 여과: 다윈의 만능산

 

무작위 변이(random variation)와 자연선택은 눈먼 변이(blind variation)와 환경적 여과(environmental filtration)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첫째 비유를 둘째 비유로 대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우선 “눈먼”이라는 말이 “무작위”라는 말보다 더 나은 이유는 전자가 변이의 원인이 필요, 이익, 장점 또는 지역적 환경에 대한 적합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 명확히 의미하기 때문이다. 무작위 변이가 필연적으로 “눈먼 과정”이기는 하겠지만, 다윈주의 과정은 사실 변이에 대해 무작위적인 것조차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여과라는 수동적 표현이 자연선택보다 더 나은 이유는 “선택”이란 말이 의도적이라는 암시를 줄 뿐만 아니라, 계통과 형질에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 지역적 요인일 뿐인데, “자연”이라는 단어가 그 이상을 내포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여과는 거름망의 수동적 작용이며, 걸러내기란 지역적 환경 작용이다.

다니엘 데닛은 <다윈의 위험한 생각(Darwin’s Dangerous Idea)>(1995)이란 책에서 이를 가장 잘 설명하는데, 다윈 이론을 만능산(universal acid)과 같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전통적 개념들을 부식시킨다. … 다윈의 아이디어는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만능 용매와 같아서 모든 것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의문이 제기된다. 다윈 이론은 과연 무엇을 남겼는가?”(p.521) 사실 남겨놓은 것은 데닛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적으며, 이 장에서 이를 논하겠다.

무엇이든 목적 대비 수단의 경제를 떠올리게 하는 어떤 것, 특히 창조성, 독창성, 지혜, 사전계획, 신중한 설계, 명석한 실행 등등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어떤 것을 한번 떠올려보라. 그러면 그것이 방금 언급한 그러한 특징들과는 전혀 무관한 단지 길고 무료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데닛이 말했듯이, 그 과정은 사실 알고리즘, 즉 중립적 기질(substrate neural)이고, 무심하며 기계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중립적 기질인 그것은 거의 모든 물질 화합물의 속성들, 예를 들어, 거대분자 하나하나의 양상들, 거대분자 복합체의 특징들, 더 커다란 응집체의 형질들, 모나드 속성들(monadic properties), 관계 속성들, 공간적으로 흩어져 있는 여러 종류의 물체 속성들 등등에 마법처럼 하나의 입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 과정은 많은 서로 다른 종류의 입력들에 의해서 이행되며, 그리고 많은 서로 다른 종류의 절차를 통해서도 이행될 수 있다. 무심함(mindless), 즉 서로 다른 기질에 대해 작동하는 이 모든 절차는 “다윈주의”라고 말할 공통적인 무엇을 가져야 한다. 이 절차들은 마법에 의해, 또는 독창성, 창조성, 사전계획, 예측, 설계, 판단, 신중함, 신, 지혜 등등을 요구하는 다른 과정에 의해, 작동될 수 없다. 자연선택 과정은 튜링머신만큼이나 무심하며, 스프링으로 작동되는 회중시계만큼이나 기계적이다.

자연에서 수단/목적의 경제(means/ends economy)를 보여주는 모든 것은 다윈이 발견한 무심하고 중립적인 기질의 알고리즘이 작동한 결과이다. 나방 날개의 눈 모양 무늬, 성체 헤모글로빈과 비교하여 더 강한 태아 헤모글로빈의 산소 결합력, 또는 박쥐의 반향위치탐지 메커니즘 등과 같은 적응은 다윈 알고리즘의 결과이다. 그러나 훨씬 더 급진적인 주장이 있다. 즉, 움직이는 표적을 추적하여 포획하는 정교한 행동이나 인간의 생각과 같은 결과물을 얻거나 보유하는 과정 또한, 다윈이 발견한 무심하고 중립적인 기질의 알고리즘에 의해 진행된다는 것이다. 눈먼 변이와 자연선택은 적응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일 뿐 아니라, 행동이 환경에 반응하여 적절한 가소성을 보여줄 때는 언제나 실시간으로 작동하며, 여기에는 인간이 목적이라고 표현한 어떤 것을 위해 행동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가 자연에 어떤 의도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묻게 된다.

자연에 어떤 의도도 없다는 것은 뉴턴 이래 점진적으로 우리에게 각인된 사실이다. 처음으로 의도를 비판했던 사람은 데카르트였다. 그러나 의도의 역할에 대한 데카르트의 부정을 물리역학 분야에서 구체화한 것은 뉴턴이었다. 칸트도 이러한 견해를 지지했는데 그가 정작 유명한 말을 남긴 것은 생물학 분야였다. “풀잎의 뉴턴 같은 인물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풀잎의 뉴턴”, 즉 다윈은 칸트의 말이 있고 나서 20년 후 영국 슈롭셔(Shropshire) 주에서 태어났다. 비록 다윈이 의도를 갖는 것처럼 보이는 무엇이 어떻게 순전히 물리적이고, 인과적이며, 비목적론적 과정의 결과인지를 설명해주었지만, 다윈이 그렇게 입자론적 주장을 하기 이전부터 역학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도에 세계의 어떤 역할을 부여하기 곤란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스피노자가 이것을 가장 일찍 인식했다(윤리학(Ethics), Appendix p.59).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도)가 과거로부터 현재의 상황과 사건을 발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미래로부터 과거를 발생시키는 의도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엔텔러키(entelechies, 활력)도 역학(mechanics)의 기반에서 배제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증거 기반에서 보존 법칙을 위반하기 때문이며, 무심한 역학적 원인이 어떻게 의도를 발생시킬 수 있는가 하는 선결문제를 요구하기(beg the question) 때문이다. 결국, 우주에서 의도가 출현하게 되는 유일한 가능성 있는 설명은 자애로운 “신에 의한 설계”만이 남게 된다. 그리고 신에 의한 설계 이론에 따른다면, 자연의 모든 수단/결과의 섭리에서 고려되는 명확한 의도는 실재적이지만, 파생된 것이다. 왜냐하면 인공물처럼 그것들은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또는 적어도 매우 강력한 행위자의 원초적 의도에 따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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