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미래철학

2019.04.22 19:38

박제윤 조회 수:211

과학기술과 미래철학

창의적 과학기술을 위해 철학의 비판적 사고 교육이 필요하다.

박제윤(인천대 기초교육원 교수)

 

언제나 선도적 과학기술의 발달에 철학의 역할이 있었다. 여러 과학노벨상 수상자들의 저술은 그들의 철학적 성찰을 보여준다. 심지어 하버드의 물리학자 토머스 쿤과 생물학자 윌슨은 각기 『과학혁명의 구조』와 『통섭』이란 철학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기술, 과학, 철학

기원전 5세기 무렵 그리스 기하학자 피타고라스는 “사랑하다”는 뜻의 “필로(philo)”와 “지혜로움”이란 뜻의 “소피아(sophia)”를 결합시켜, 자신을 “지혜로움을 사랑하는 자”란 뜻으로 처음 “필로소퍼(philosopher)”라고 불렀다. 철학자가 사랑하는 “지혜로움”이란 무엇일까?

기원전 3세기 무렵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술자, 과학자, 철학자를 구분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자연에 대한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경험이 많아서 무엇을 잘 만들 손재주를 가진 사람이 있는데, 그가 기술자(artist)이다. 그리고 무엇을 잘 만들지 못하지만, 그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과학자(scientist)이다. 그러므로 과학자란 자연에 대해 “왜?”라는 호기심을 발동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과학을 공부하면서 더 깊은 호기심을 발동하여 다시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으며, 그가 바로 철학자(philosopher)이다.

이러한 구분과 인식에서 보면, 과학자는 실제 생산 활동에서 기술자보다 유능하지 못하더라도, 더 지혜로운 사람이다. (오늘날 기술자는 더 좋은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과학이론을 소양으로 갖추어야 하는데, 이들이 바로 공학자, “엔지니어(engineer)”이다.) 같은 맥락에서, 과학자보다 철학자는 세계의 원리를 더 깊게 이해하려는 측면에서 지혜로움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처음 그들은 과학에 대해 어떤 호기심을 발동했는가?

플라톤은 피타고라스 기하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기하학 지식의 탁월함을 보았다. 학생과 선생이 나누는 기하학 지식은, 운동장 바닥에 대략적으로 그려진 도형이 아니라, 머릿속에 추상적으로 상상되는 완벽한 도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하학 지식을 우리가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을 설명하려고, 그는 억지스럽게 이데아(Idea) 세계를 가정하였다. 반면,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에 어떤 호기심을 발동했는가? 그는 특히 생물학을 공부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 즉 연구방법론에 호기심을 발동하였다. 그는 자연의 원리가 본질로 설명된다고 가정했다. 본질이란 일반화, 즉 전칭긍정명제(모든 A는 B이다)로 표현된다. 과학자는, 관찰로부터 “귀납추론”을 통해 일반화를 얻으며, 일반화로부터 “연역추론”으로 발생된 현상을 설명하거나, 발생될 사건을 예측한다. 그러므로 그는 창의적 과학 연구방법과, 과학연구자들이 오류를 범하지 않을, 논리학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두 철학자에게서 후대 과학연구자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었는가? 플라톤으로부터, 기하학과 수학의 지식이 절대 진리를 제공한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런 확신에서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케플러, (데카르트를 통해) 뉴턴 등은 천체 운동을 수학 및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후대 과학연구자들은 학문의 연구방법을 명확히 고려하였다. 그들은 창의적 발견을 위해 귀납적 방법을 활용하였고, 원리적 설명에서는 연역적 방법을 적용하였다. 그리고 논리학을 공부하여 오류를 범하지 않을 능력을 키웠다. 그렇게 과학의 더 깊은 “왜?”를 이해한 “지혜로움”으로 연구자들은 근대 과학기술 문명을 화려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러했는가?

 

과학과 통섭하는 철학

서양의 근대 과학기술 문명이 다만 고대의 “지혜”를 받아들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과학을 지켜보는 철학자들과 철학의 소리를 듣는 과학자들은 일관된 설명 체계, 즉 부합하는 체계를 위해 비판적 사고를 실천하였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는 4가지 본질 중 “목적”을 말하는 설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정하였지만, 갈릴레오와 데카르트는 자연을 양적(수학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학문연구의 방향을 틀었다. “본질적으로 어떠하다”는 것은 “그냥 그렇다”는 공허한 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방향에서,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데카르트는 도형을 수식으로 나타낼 “해석기하학”을 고안하였다. 그를 통해 더 깊은 “왜?”를 이해했던, 뉴턴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구조』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의 체계를 모방한 지식체계의 원형, 즉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었다. 또한 『광학』에서 학문탐구 방법의 패러다임도 보여주었다. 이후 과학연구자들은 뉴턴 패러다임 따라 하기만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철학자 칸트는, 뉴턴을 공부하고서 그런 훌륭한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순수이성비판』에서 찾았다. 그가 보기에 수학, 유클리드 기하학, 뉴턴역학 등은 모두 “순수사유만으로 진리를 확장시켜줄” 지식, 즉 “선험적 종합판단”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전후 수학자인 철학자들은 언어를 엄밀히 계산할 표기법을 찾았다. 버트란트 러셀은 술어논리를, 그의 제자 비트겐슈타인은 명제논리를 고안하였다. 그것은 과학연구자들이 논리적 사고를 수학적으로 계산할 도구로 활용될 수 있었다. 특히 러셀은 추론을 위한 연결사로 and, or, not, if-then 등 네 가지로 충분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은 (p → q) ≡ (~p v q)이므로, and, or, not 등 셋만으로 충분하다고 보았다. 그의 철학적 이해는 과학기술자들이 인간의 사고를 모방하는 컴퓨터 논리소자를 3가지로 만들도록 안내하였다. 그들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철학자의 지혜에서 찾았다.

그 시기에 세 분야의 과학에서 혁신이 있었다. 수학에서 괴델이 “불완전성이론”을 내놓았고,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등장하였으며, 아인슈타인이 시간․공간의 “상대성이론”을 내놓았다. 그로 인해서 칸트가 고려하였던 선험적 종합판단은 신뢰되기 어려워졌다. 그의 철학적 주장이 새로운 과학에 부합(통섭)하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생물학자 다윈은, 뉴턴의 기계론적 관점에서 자연선택에 근거한 진화론을 내놓았다. 이제 생물학에서조차 (아리스토텔레스) 목적론은 버려졌다. 그렇다면 당대의 과학에 부합하는 어떤 철학이 나와야 했던가? 미국 하버드의 퍼스가 처음 “프래그머티즘” 철학을 열었다. 이후로 제임스, 듀이, 콰인 등이 계승하고 발전시켰으며, 지금은 처칠랜드 부부가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

그 철학적 관점은 “철학적 성찰만으로 진리를 탐구할 수 있다”는 전통 철학의 관점을 헛소리로 만들었다. 이제 유클리드 기하학 지식이 이성적 직관으로 얻어지는 진리로 인정될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단번에 진리를 얻을 수 없으며, 진리로 확신할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히 언어를 분석하는 철학적 성찰은 진리를 가져다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어의 의미가 배경지식 혹은 이론체계와 긴밀히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무지개를 바라보며 우리는 무심코 7가지 색깔을 구분하지만, 한국 조상들은 5색 무지개를 보았다. 지금 우리가 7가지로 바라보는 것은 뉴턴이 정해준 분류를 공부한 배경지식 때문이다. 과거에 불(fire)과 호흡은 전혀 동일하지 않은 의미를 지녔지만, 현대 화학은 모두 산화작용이라는 것을 밝혀주었다. 이렇게 과학의 발전에 따라서 과학적 개념이 수정되거나 버려지기도 한다. 이런 철학적 반성에서 프래그머티즘은 지식체계의 전체론(holism)을 주장한다. 그 새로운 관점에 따르면, 관찰과 실험을 통해 과학연구자는 객관적 사실을 얻는 것이 아니며, 오직 배경가설 혹은 이론에 의한 데이터를 확보할 뿐이다. 더구나, 과학연구자는 모든 데이터를 모으지 않으며, 오직 가설에 맞춘 실험과 데이터를 수집할 뿐이다.

이러한 새로운 철학적 인식은 현대 과학연구자들에게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 지침을 제공했으며, 그것을 여러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의 저술에서 확인된다. 한국에 소개된,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물리학과 철학』, 그리고 피터 메다워의 『젊은 과학도에게 드리는 조언』, 프란시스 크릭의 『대답한 가설』 등은 과학연구에 어떠한 철학적 반성, 즉 비판적 사고가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살펴보았듯이, 새로운 과학기술 연구의 기초에 철학적 성찰이 있었으며, 새로운 철학적 성찰의 바탕에 과학기술의 발달이 있었다.

 

미래의 과학과 철학 교육

한국은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철학은 무엇을 어떻게 성찰해야 하는가? 미래 연구자들은 거대한 변혁, 변곡점 혹은 특이점(singularity)이 곧 다가온다고 말한다. 이전 시대에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적 변화는 뇌과학, 인공지능, 분자생물학 등의 과학기술 발전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에 그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어떤 철학적 지혜를 구해야 하는가? 전통적으로 철학의 주제를 크게 구분하자면, 앎(지식) 자체에 대한 궁극적 물음과, 실천에 대한 궁극적 물음으로 나뉜다. 전자는 “인식론” 혹은 “지식론”이고, 후자는 “도덕철학” 혹은 “윤리학”이다.

인식론의 측면에서,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과학연구자는 더 좋은 연구를 위해 전통 인식론의 물음을 다시 탐색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무엇을 알아보려면, 그리고 무엇을 예측하거나 설명할 능력을 가지려면, 어떠한 능력을 가져야 하는가? 플라톤이 말했듯이 선험적인(a priori) 추상적 개념을 가져야 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일반화를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플라톤처럼 추상적 개념이 무엇인지,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일반화가 무엇인지, 현대 뇌과학과 인공지능의 기초에서 다시 찾아야 한다. 신경철학자 처칠랜드에 따르면, 인공신경망(딥러닝)의 은닉유닛 층은 표상, 개념, 일반화 등을 담아내는 장소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가? 인공지능 과학기술연구자는 더 좋은 연구를 위해 더 깊은 “왜?”의 지혜를 철학자와 협력하여 찾아보아야 한다.

윤리적 측면에서, 미래를 살아갈 구성원들은 새로운 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가치관 혹은 도덕관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급변하는 사회에서 전통의 믿음이나 확신은 미래의 실천적 지침이 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통 사회학과 인문학의 관점과 현대의 유전학, 분자생물학, 진화생물학 등의 연구들이 서로 부합(통섭)하는 세계관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모든 연구를 위해 과학기술자와 철학자는 물론, 모든 분야의 인문학자들이 교류하며, 비판적 사고를 지속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인문학자들은 과학적 소양을 지녀야 하고, 과학연구자들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출 필요가 있다. 우선적으로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과의 학부 교과과정에 다른 전공을 필수로 겸할 필요가 있다. 만약 과학연구자가 철학(혹은 인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더욱 바람직하다.

보편교육의 측면에서, 프랑스처럼 철학박사가 고등학교 교사로 임용되어 토론과 논술 교육을 담당하는 교과과정이 편성된다면, 국민에게 철학적 소양을 가르치는 좋은 방안이 된다. 나아가서, 이것은 선진국이 오래 전 겪고 극복했던, 지금 한국이 마주하는 다양한 사회적 논쟁과 각종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비판적 사고로 무장된 깨어있는 국민은 다양한 문제들을 극복할 지혜를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견해를 듀이의 저서, 『민주주의와 교육』에서도 볼 수 있다.

끝으로, 에드워드 윌슨은 『통섭』에서, 자신의 전문 연구 영역을 넘어 다양한 분야를 공부함으로써, 연구자는 비판적 질문을 하게 되고, 결국 창의적 사고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자들이 창의적으로 연구하려면, 철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통섭 연구와 비판적 질문이 어떻게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능케 하는가?

신경철학자 처칠랜드가 『플라톤의 카메라』에서 말하는 가설적 설명은 이렇다. 우리가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면, 뇌는 그 지식의 개념체계를 신경망 활성 정도로 각인한다. 그 개념체계의 핵심 개념은 신경망 활성의 동역학적 끌개(attractor)이다. 연구자가 자신의 핵심 개념인 신경망의 끌개를 의식적으로 회의, 즉 의심했을 때 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예를 들어, 뉴턴역학의 핵심 개념은 절대 시·공간 개념이다. 아인슈타인이 뉴턴역학은 물론 칸트를 넘어 여러 새로운 개념들을 습득한 후, 그 핵심 개념을 의식적으로 회의했을 때, 신경망은 자기조직화를 통해 스스로 새로운 개념체계로 재편성된다. 그 재편성이 완료되면, 새로운 개념체계는 그가 세계를 새롭게 인지하고 예측할 능력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지혜로운 과학기술을 뇌에 각인하기 위해, 나아가서 지금의 곤경과 다가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학문의 경계를 넘어야 하며,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야 한다. 그것을 위해 지혜를 사랑했던 철학자들이 앞서 무엇을 왜 물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철학 교육이 필요하다.

 

『과학과 기술』 2019.01, 과학기술총연합회

http://ebook.kofst.or.kr/book/201901/#page=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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