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생물철학으로 본 인종

2020.03.03 14:47

박제윤 조회 수:97

12. 생물철학으로 본 인종

Biophilosophy of Race

 

 

뤽 포세르 Luc Faucher / 최순덕 역

 

 

이 장은 생물철학에 대한 내용이다. “생물철학(Biophilosophy, 대문자 B)”이란 용어는 이미 잘 알려진 “신경철학(Neurophilosophy, 대문자 N)”과 맥을 같이하며 이와 사촌 격이 되는 용어이다. 신경철학(N)은 철학자들이 신경과학에 몰두했던 1980년대에 나타난 신생 학문이다. 신경철학(N)은 철학자들이 철학과 뇌과학 사이의 관계를 좀 더 잘 묘사하고 좀 더 치밀하게 연결해보려는 바람에서 시작되었으나, 이후 신경과학의 철학(philosophy of neuroscience)과 신경철학(neurophilosophy, 소문자 n)이란 두 학문 영역으로 나뉘었다. “신경과학의 철학”은 과학철학의 한 분과로 신경과학 관련 혁신사업이 주장하는 개념, 분석방법, 핵심 이론 등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전념한다. 신경과학의 철학이 다루는 예로, 뇌를 들여다보는 뇌영상장비(fMRI)의 성능이 뇌를 표현하기에 적절한지 질문하고(Klein 2010), 신경심리학적 장애(disorders)로부터 특정 모듈(modules)을 추론하는 것이 유효한지를 평가한다(Machery 2014). “신경철학(n)”은 철학의 한 분과로, 전통 철학적 개념 및 문제를 밝히거나, 혹은 최근 신경과학의 발전으로 제기되는 새로운 철학적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신경과학 연구 성과를 이용하며, 이런 배경에서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이런 연구 과제 중 하나는 현재의 과학 지식에 맞게 여러 통속적 개념(folk concepts)을 다듬는 일인데, 그런 과정은 어느 통속적 개념을 제거하거나 철저하게 재정의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Churchland 1986). 신경철학(n)의 또 다른 연구 과제는 신경과학 지식을 이용하여, 행동의 책임을 결정하는 문제 혹은 도덕적 판단의 뿌리와 같은 오랜 철학적 문제들에 대답을 구하거나 문제의 틀을 다시 짜는 일이다(Roskies 2010; Greene 2014).

신경철학(N)의 이웃사촌인 생물철학(B) 역시, 생물학의 철학과 생물철학(소문자 b)이란 독특한 두 가지 연구 프로젝트로 구성된다. “생물학의 철학”은 선택, 적응, 기능, 종 등과 같은 전통적으로 생물학에서 다루는 개념에 관심을 가진다(Neander 1991; Rosenberg and Bouchard 2003). 반면 “생물철학(b)”은 인간 본성과 같은 전통적 철학 개념이나 문제를 풀기 위해 생물학의 연구 성과를 이용한다(Machery 2008).

여기에서 나는 (소문자 b의) 생물철학자가 맡을 수 있는 (신경철학(n)이 추구하는 연구 프로젝트와 비슷한) 두 종류의 연구 프로젝트를 밝히려 한다. 즉, 통속적 개념을 제거하는 (그리고 아마도 새로운 개념으로 대체하는) 프로젝트와 통속적 개념의 역량(capacity)과 성향(disposition)의 진화론적 기원을 기술하는 프로젝트이다. 따라서 이번 장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부분에서, 철학과 생물학이 만나 몇몇 통속적 개념 또는 초기-과학적 개념(proto-scientific concepts)을 어떻게 다듬는지 또는 제거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는 “인종(race)”의 존재 여부에 관한 논쟁에서 인용되었던 여러 주장을 제시하려 한다. 이런 주장은, 어떤 이들이 예상하는 것(즉, 1960년대부터 생물학과 사회과학에서 힘을 누렸던 “생물학적 인종은 없다는 합의”로 주어진 것)과 달리, 오늘날 생물학에서 유전체학(genomics)이란 이름으로 재등장한 “인종”을 주장한다. 어떤 학자들은 이런 주장을 “인종의 사회적 구성주의에 대한 유전체의 도전”이라 이름 붙였다(Shiao et al. 2012). 나는 이런 맥락으로 사용된 “인종”이란 관념을 주장할 것이다. 이런 식의 인종이란 관념(notion)은 관련 연구 성과에 의해 지지받기도 하지만, 그동안 인종의 통속적 관념으로 다루어져왔던 것과는 여러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생물철학은 도전에 직면한다. 즉 통속적 관념에서 볼 때 인종의 실체(entities)에 해당하는 속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종”이란 용어를 유지해야 할지, 아니면 간단히 배제해야 할 것인지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어떤 관념을 제거하거나 가지치기하려 할 때, 그동안 신경철학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던 고려사항들을 나는 밝혀보려 하는데, 그 일부는 규범적 기준(normative stakes)과 연관된다. 그래서 경험적 적절성 말고도 다른 요소들을 비춰보는 생물철학적 반성이 필요하며, 이는 어떤 개념의 운명을 결정할 때 반드시 설명되어야만 하는 요소이다.

둘째 부분에서, 나는 다른 인종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을 고려하도록 만드는 영역마다 특수한 메커니즘에 진화가 연루되는지, 아니면 사실상 [진화와 무관하게]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인지를 논의할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가 인종적 인지(racial cognition)에 특화된 메커니즘을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인지(ethnic cognition)에 특화된 메커니즘과 같이, 다른 방식의 메커니즘이 오히려 우리가 인종을 고려하는 독특한 사유방식을 가지도록 활용되어왔다는 주장을 논증하려 한다. 나는 이런 메커니즘에 대한 지식이 인종차별주의(racism)를 이해하고 뿌리 뽑기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주장하려 한다. 이 부분은, 생물학과의 접촉이 인종주의(racialism) 및 인종차별과 같은 현상에 대해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사유방법으로 어떻게 안내해줄 수 있을지를 보여줄 것이다.

 

유전체의 도전 그리고 인종

 

인종이 존재하는지 의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게 간단치 않은데, “인종”의 의미가 계속 변해왔고 지금도 변하는 중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대체적인 이유이다(역사적 전망을 Hudson 1996에서 참조). 인종에 대한 논쟁의 실질적인 부분은 우리의 통속적 인종(이후로 인종f로 표기) 개념에 달려 있다. 그런 맥락에서 나오는 한 가지 의문은 통속적 인종f 탓이라고 할 만한 분명한 특징을 가진 존재가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두 가지 사안이 해결되어야만 한다. 첫째, 우리는 통속적 인종f의 특징을 먼저 명시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실제로 그런 식으로 묘사된 인종에 대응되는 형질적 특징이 있는지 확인해야만 한다.

생물철학과 생물학의 철학 사이의 경계에 있는 또 다른 의문은 과학에서 사용하는 “인종”(이후로 인종s로 표기)이란 개념의 사용과 관련한 질문이다. 몇몇 연구자들(Andreasen 1998, 2004; Kitcher 2003)이 보기에, (생물학에서 사용하는 인종 개념은 통속적 개념으로 본 인종의 특징 대부분 혹은 그 일부분을 담아내지 못하더라도) 그런 인종 개념이 생물학 안에서는 정식으로 잘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생물학에서 인종 자체가 있는지에 관한 열띤 논의가 있었다. 생물학에서 인종이란 개념이 필요한가? 생물학은 인종이란 개념을 제거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하는가? 일부 연구자들은 우리가 통속적 인종f의 개념을 최소한으로 수정한 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Sesardic 2010). 그리고 다른 이들은 통속적 인종f의 개념을 제거하거나 혹은 그 개념의 존재론적 의미를 빼버리자고 주장한다(Zack 2002; Spencer 2014; Hardimon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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