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이 철학을 어떻게 말하는가 - 역자 서문

2020.03.03 12:11

박제윤 조회 수:58

[생물학이 어떻게 철학을 말하는가?

- 자연주의를 위한 새로운 토대]

 

이 책은 두 가지 도전적인 의도를 강조한다. 첫째는 제목, “생물학이 철학을 어떻게 말해주는가?”에서 알 수 있듯이, 생물학 기반에서 철학을 어떻게 연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궁금해할 수 있다. 언제 철학이 생물학 기반에서 연구하기라도 했는가? 이런 의문은 다음을 묻게 만든다. 철학이란 학문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철학은 여타 학문과 어떤 관계를 갖는가? 이 책 2장의 저자 알렉산더 로젠버그는 여러 분과학문이 철학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고 말한다. 물론, 그 말이 틀린 이야기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렇게 말하면 한 번 더 묻게 된다. 그러면 철학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면, 철학이 시작된 것은 어떤 이유인가? 이러한 궁금증은, 처음 철학자들이 무엇을 질문하고, 왜 질문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답했는지 등을 알아보면 해소된다. 그리고 이러한 해소를 통해 앞의 질문도 해소될 수 있다.

이 책의 둘째 의도는 부제목, “자연주의를 위한 새로운 기초”가 말해주듯이, 자연주의 철학을 하자고 설득하려는 것이다. 이 책의 편집자 리빙스턴 스미스는 서문에서, 이 책이 생물철학을 다루는 논문들로 구성되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생물철학이란 발전하고 변화하는 현대 생물학 연구에 근거해서 전통 철학의 쟁점들을 다시 검토하려는 노력이다. 이렇듯, 과학에 근거해서 철학을 연구할 수 있으며,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자연주의 철학이다. 이러한 철학 연구가 왜 필요한가? 인류가 그동안 연구하고 기대었던 전통 철학의 연구 성과는 현대 과학에 비추어 지금 시대에 부합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의도에 대해 위의 질문을 다시 하게 된다. 처음부터 철학이 과학에 근거해서 연구하였는가? 과학과 철학의 관계는 어떠한가? 여기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국 앞의 질문에 대답해준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철학을 연구했는가?

 

플라톤은 자신의 학교, 아카데미아의 교문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에 들어서지 말라!”라고 써 붙였다. 그는 피타고라스 기하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이렇게 궁금해하였다. 기하학 지식이 훌륭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2직각과 같다”는 지식은 참이라 인정되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가? 그런 진리의 지식을 아는 우리의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대답할 수 없어 보이는 이 질문에, 그는 궁여지책으로 “이데아”의 진리 세계가 있고, 우리 영혼이 출생 전 미리 보았기 때문이라는 지어낸 이야기를 했다. 그 입장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을 가져서, 삼각형을 논리적으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 내각의 합이 2직각과 같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므로 훌륭한 학문을 탐구하려면, 이성의 능력을 잘 발휘해야 한다. 그것을 가장 잘 발휘했던 학자로, 기하학자이며 철학자인 데카르트, 데카르트를 공부했던 물리학자 뉴턴, 뉴턴을 공부한 철학자 칸트 등등이 있었다.

데카르트는 고대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적 체계”의 중요성을 전파했고, 철학에도 그러한 체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철학을 공부한 뉴턴은 자신의 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딱 그 체계로 만들어 보여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역학이 진리인 이유로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이 실제 세계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가정하였다. 그런 뉴턴을 공부한 칸트는 뉴턴의 지식을 “선험적 종합판단”, 즉 “이성적 사고만으로 확장 가능한 진리의 지식”으로 보았다. 그런 지식에 수학, 유클리드 기하학, 뉴턴역학 (그리고 칸트 자신의 철학) 등이 포함된다. 그는 이성적 능력에 대한 탐구로 󰡔순수이성비판󰡕을 내놓았다. 뉴턴의 가정과 달리, 그는 공간과 시간이 인식의 직관 형식이라고 보았다. (훗날 그 세 분야의 지식이 선험적 종합판단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괴델의 수학 체계의 불완전성이론, 비유클리드 기하학,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뉴턴이 가정하듯이 별개로 존재하지 않으며, 칸트가 가정하듯이 측정 불가한 직관의 형식도 아니다. 시공간은 측정 가능한 상대적 관계이다.)

수학자인 철학자들은 이성에서 놀라운 논리적 추론 능력을 보았다. 수학자 프레게는 논리적 “사고를 수식처럼 계산할” 가능성을 보았고,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러셀은 그 능력을 기호(술어) 논리체계로 보여주었다. 러셀의 제자 비트겐슈타인은 그것을 개선하여 명제 논리체계를 만들었다. 그런 논리체계는 데카르트가 꿈꿨던 “환원주의”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영향을 받은 빈 학단, 즉 논리실증주의 입장에 따르면, 모든 과학 지식은 경험 내용을 기술한 관찰 문장으로부터 연역 논리로 구성될 수 있으며, 따라서 관찰 문장으로 환원될 수 있다. 그리고 오직 “검증 가능한” 명제만이 의미를 지닌다. 기호 논리체계는 컴퓨터 과학기술의 탄생에 도움이 되었다. 또한, 그런 철학적 동기에서, 튜링은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는 계산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수학, 기하학, 그리고 물리학 등의 지식체계에 대한 철학 이야기가 그러하다면, 생물학에 대한 철학 이야기는 무엇인가?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학보다 생물학에 더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은 의자에 앉아 사색만으로 탐구할 수 없으며, 세계에 대한 “관찰”과 실험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렇게 묻게 된다. 생물학자는 생물학을 어떻게 연구하는가? 그리고 계란에서 코끼리가 나오지 않고 병아리가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따르면, 생물학자는 관찰로부터 “귀납추론”을 통해 일반화에 이를 수 있다. 그리고 그 일반화로부터 “연역추론”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예측하거나, 이미 일어난 사건을 설명할 수 있다. 일반화란 전칭긍정의 문장 형식이며, 무엇의 “본질”을 가리키는 문장이다. 그러므로 관찰을 통해 본질을 발견할 수 있고, 본질을 알면 “자연법칙” 또는 “원리”를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생물학 연구 모습에서 본질을 넷으로 파악했다. 카멜레온의 피부(질료인)가 나뭇잎에서 가지로 이동함(작용인)에 따라서, 보호색(형상인)으로 바뀌었는데,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기(목적인) 위해서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본질은 이유를 말해주는 “목적인”이다. 과학자는 그런 본질(일반화)을 발견하기 위해 관찰 자료를 “분류”해야 한다. 그 분류의 기준은 “범주(categories)”라 불린다.

여기에서 나오는 철학적 쟁점은 이렇다. “본질”이 무엇이며, 그것이 존재하기는 하는가? 귀납추론이 정당화되는가? (일반화가 무엇인가?) 관찰은 순수한 사실 자체인가? 범주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보편 개념은 존재를 가리키는가?

훗날 의사이고 법률가이며 철학자인 로크는 보편 개념을 당시의 의학적, 심리학적 상식에 근거해서 대답했다. 본질적 개념이란 수집된 감각 경험으로부터 추상화된 언어일 뿐이며, 실제 세계에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처음엔 고래가 물고기의 한 종류로 분류되었지만, 이제 포유류로 분류되는 것을 보면, 우리의 개념적 이해는 바뀔 수 있다.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은 “비본질주의” 또는 “유명론”으로 불린다. 흄은 귀납추론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즉 관찰로부터 일반화가 필연적으로 추론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사실”로부터 “가치”가 필연적으로 추론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런 지적은 나중에 무어에 의해 “자연주의 오류”로 불리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정했던 자연(천체)의 “목적”은, 뉴턴에 의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자연에 어떤 정신적 “의도” 같은 것은 없으며, 오직 “원리”(법칙)가 존재할 뿐이다. 그러한 (제거주의) 관점은 다윈에게로 이어졌고, 생명체의 진화에 어떤 의도나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식되었다. 다윈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하버드 수학자이며 철학자 퍼스는 이렇게 말한다. “진화론은 일반적으로 역사에 대해, 특별히 과학사에 밝은 빛을 비춘다. … 반면에 일반적으로 역사의 진화, 특별히 과학의 진화도 진화론에 밝은 빛을 비춘다.” 이런 입장에서 그는 “진리”를 말하지 말고, “믿음”을 말하자고 주장한다. 그 관점에서, 절대적 확실성, 엄밀성, 필연성, 보편성 등을 추구해온 전통 철학자의 탐구는 방향을 잘못 잡은 것으로 인식된다.

프래그머티즘을 계승하는 하버드 철학자 콰인은 이렇게 주장한다. 철학자들이 그동안 찾았던 “필연적 정당화”, 그리고 “합리적 체계화”는 수학을 모델로 연구되었지만, 괴델의 불완전성 이론이 말해주듯이, 수학 자체에서도 그런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이제, 철학은 지식의 체계화와 관련하여 데카르트식 환원주의 기대를 버려야 한다. 어느 용어의 “의미”는 배경지식 전체에 의존하며, 따라서 이해란 “믿음의 그물망”에 의해 파악된다. 그러므로 배경지식이 바뀌면, 믿음 체계도 바뀐다. 즉, 과학이 발전하고 변화하면, 그에 따라서 철학의 믿음 체계도 변화한다. 그런 전망에서, 콰인은 철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자는 「자연화된 인식론」(1969)을 발표하였다. 이 논문에 격렬히 반대했던, 퍼트남과 김재권의 주장을 국내 학자들이 옮기면서, 국내에서 자연주의 논의는 슬며시 사그라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해외에서 자연주의 철학은 유전학, 신경과학, 심리학, 인공지능, 진화사회생물학 등의 발전에 힘입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그것을 이 책의 논문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콰인의 자연주의 철학은 처칠랜드 부부에 의해 신경철학으로 계승되고 발전되었다. 그들 부부는 각기 뇌과학과 신경망 인공지능 연구에 분업적으로 참여하며, 함께 자연주의 철학을 다듬고 보완해갔다. 그들은 전통적 환원주의 기대가 잘못이라고 명확히 이해하지만, 대신 “이론 간 환원”, 즉 부합(consilience, 통섭)이란 새로운 용어를 제시한다. 그들 부부는 최근의 뇌과학과 신경망 인공지능에 기초하여 새로운 표상 이론을 제안한다. 신경계 작용을 계산적으로 접근하는 이나스, 세즈노스키 등의 가설에 근거해서, 신경망 인공지능이 보편 개념과 일반화(가설)를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 즉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개념적으로 사물을 알아볼 수 있고, 법칙적 예측을 할 수 있는지 신경철학적으로 해명한다. 이러한 철학적 이해는 딥러닝 연구의 철학적 기초가 되었다. 나아가서, 패트리샤 처칠랜드는 과학적 이해를 위한 철학을 넘어 도덕에 대한 이해에 도전하는 중이다.

 

이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전통적으로 철학과 과학은 교류하며 함께 발전해왔다. 과학의 성과에 대해 철학적 성찰이 시대적으로 요청되었고, 철학적 해명은 과학자가 자신의 과학연구 기획을 확신하고 추진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한마디로, 철학은 과학에서 탄생하고, 과학의 변화에 따라 수정되고 발전하며, 과학을 안내한다. 그러므로 자연주의를 외면하는 철학은, 현재 진행되는 과학을 외면하는 어리석은 태도이다.

이런 지적에도, 반환원주의 태도에서 아래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자연주의 철학이 경험에 기대는 한, 그것은 환원주의를 고집하는 것이 아닌가? 현대 자연주의가 프래그머티즘에서 출발하는 태도임을 고려한다면, 위의 질문은 불필요하다. 자연주의가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경험이 이론에 의존하며, 그 내용이 언제든 새롭게 이해될 가능성을 열어놓기 때문이다. 또한, 이론 간 환원의 관계에서, 통속적 관념은 새로운 과학적 이해에 따라, 환원적으로 설명되는 것인가, 아니면 제거될 것인가? 통속적 관념이 새로운 과학적 성과에 의해, 새롭게 이해되는 환원이 일어날 수도, 그 관념에 일부 수정이 일어날 수도, 그리고 그 관념이 온전히 제거될 수도 있다. 자연선택이 그러했듯이, 현재 유력해 보이는 어느 통속적 관념이 그중 어떻게 될지는 두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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