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자연의 의도와 우리의 의도

2020.03.03 14:36

박제윤 조회 수:104

7. 자연의 의도와 우리의 의도

Nature’s Purposes and Mine

 

 

로날드 드 수자 Ronald de Sousa / 김원 역

 

 

우리가 찾는 것을 발견할지 못할지는,

생물학적으로, 하찮은 문제이다.

_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Edna St. Vincent Millay)

 

고맙지만 사양합니다. 나는 자연이 인간을 비행 중에 음료를 마시도록 진화시키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_ 가드너 레아(Gardner Rea)의 만화에서 비행 중 음료를 거절하는 승객의 말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 사물에게 자연적으로 고유한 것은, 곧바로 그 개별 사물에 최선이며 가장 쾌적한 것이다”(Aristotle 1984b, pp.6- 7)라고 말했다. 이 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진한 낙관주의에 대한 다윈 이후 시대의 질문과 성찰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격언은 즉시 다음 네 가지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첫째, 인간이 자연을 초월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오랫동안 철학자들이 밝히려 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어떤 것을 “자연적으로 고유하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과연 무슨 의미일까? 둘째, 입에 쓴 약에 대한 이야기나 “고통 없이 성취 없다”라는 말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격언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최선의 것이 왜 가장 쾌적한 것이어야 하는가? 셋째, 누구에게 최선이고 가장 쾌적하다는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 스스로 강조했듯이,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나에게 최선이고 가장 쾌적한 것이 남에게는 그렇지 않을 경우가 많으므로, 이 격언은 추가 내용으로 보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격언이 엄밀히 옳다고 하더라도, 자연의 행복한 자식이 되고픈 만큼이나 좋은 시민이 되려는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넷째, 우리가 지금 이해하는 이 격언 내에서 “개별 사물”에 고유하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우리는 살아 있는 부분들로 구성된 총합인데, 우리가 가장 고유하고 최선인 것을 논의할 때 어떤 “개별 사물”에 대해 말하는 것인지 많은 논란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종, 인구, 집단, 개체, 세포, 유전자, 미토콘드리아까지, “이 모든 것들”이 자연선택의 수혜자 혹은 자연선택의 “단위(units)”(그 단위들이 동등한지 아닌지 역시 논란의 대상이지만)의 역할을 하는 후보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질문이, 암묵적으로라도, 이어지는 여러 질문에 적절하지만, 나는 생물학적 지식이 인간 존재로서의 우리 자신에 대한 철학적 개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에 관심을 집중하려 한다. 이런 질문들은 형이상학적 관점과 (넓게 보아서) 윤리학적 관점에서 고려될 수 있는데, 나는 후자에 더 관심을 가진다. 왜냐하면, 인간에 관한 철학이 형이상학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나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와 어떤 (가능한) 관련조차 없는 종류의 형이상학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세소관의 양자 효과가 자유의지를 가능케 하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란 가능성에 관한 추측(Penrose 1994)을 제외하면, 우리를 구성하는 원자의 내부 구조에 대한 사실이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결과를 가지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가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그 세포는 다세포 유기체를 구성하기 전까지는 10억 년 혹은 20억 년 동안 홀로 살아온 우리의 조상이라는 사실이 조금 더 철학적 이득이 있다. 더 분명히 이득이 되는 것은, 뇌가 죽은 후에도 개인의 의식은 살아 있다는 통속적 믿음에 대한 과학적 반박 같은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유추하기란 쉽지 않지만 말이다. 철학적 전통은 죽음에 대하여, 에피쿠로스학파(Epicurean)의 “오늘을 즐기라”는 관점에서부터 가치에 대한 허무주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태도를 보여준다. 이 장의 마지막에서 나는 생물학과 심리학이 사랑과 성에 관한 우리의 여러 전통 이데올로기에 어떤 가르침을 주는지 구체적인 질문을 하고, 논란이 많은 대답을 제안하겠다. 그렇지만 일단 나는 자연적 사실로부터 가치에 관한 주장을 추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바로 그 오랜 논란에서부터 출발하겠다.

 

자연과 자연주의 오류

 

우리 대부분은, “사실-가치 간극(fact-value gap)” 혹은 “이다-이어야한다 간극”(is-ought gap)이란 것이 있으며, 이 간극을 연결하려는 어떤 시도라도 “자연주의 오류(naturalistic fallacy)”를 범한다고 생각하도록 교육받아왔다. 그런 주장에 휘말리는 여러 논쟁을 살펴보는 것은 지루한 일이지만, 그러한 오류의 존재가 “어떤 윤리학적 정당화도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을 함의한다(entail)는 것만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왜 그런지 알아보기 위해, “자연(nature)”이란 단어의 애매성에 대해 밀(J. S. Mill)이 멋지게 요약한 글을 한번 살펴보자.

 

첫째 의미에서, 자연이란 존재하는 모든 것을 묶어서 칭하는 이름이다. 둘째 의미에서, 그것은 인간의 개입 없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이름이다. … 첫째 의미에서 인간의 행동은 자연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는 반면, 둘째 의미에서 인간 행동의 목표와 목적은 자연을 변화시키고 개선하는 것이다(Mill 1874, p.12).

 

“자연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 자연이란 말의 지칭(reference)은 단순히 실제 세계의 모든 사실의 총체이다. 이 자연(N1이라고 부르자)은 인간이 만드는 모든 것도 포함한다. 밀의 두 번째 자연(N2라고 부르자)은 현재의 상태이고, 이는 인간이 변형시키려는 대상이다. N1과 N2의 차이는 우리가 실제로 행하는 모든 것이다. 이것을 “행위(action)”의 앞 글자를 따서 A라고 부르자. A의 어떤 것들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들이다. A의 다른 것들은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고, 또 다른 것들은 의무론이나 가치론과는 무관한 것들이다. 가치들은 서로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한 행동, 사건, 상황이 다른 평가 차원에서는 달리 평가되기도 한다. 포스터(E. M. Foster)의 유명한 말을 상기해보라. “친구를 배신하든지 나라를 배신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는 나라를 배신할 용기를 가졌더라면 하고 바란다.”(Foster 1951, p.68) 친구에게 잘하는 것과 나라에 잘하는 것은 서로 다른 가치이고, 다른 가치 체계들과 각각 다른 연관을 맺고 있으며, 개인을 중시하는지 집단을 중시하는지의 우선순위에 따라 많이 좌우될 수 있다. 그렇지만 과연 무엇이 이런 판단을 정당화하는가? 우리는 어디서 이 가치를 택하는 이유(reasons)를 찾을 수 있을까?

가정되듯이, N1은 모든 실제 사실을 지칭하는 반면, N2는 우리가 행동하기 전에 존재했던 사실만을 지칭한다. 그리고 우리가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실제로 있었을 반사실적(counterfactual) 가능성도 포함한다. 어떤 규범적 진술도 사실에 대한 진술로부터 나올 수 없다면, 어떤 규범적 명제도 N1이나 N2로부터 나타날 수 없다. 그처럼 사실이 할 수 없다면(모든 사실이 N2와 N1의 합에 포함되어 있는데), 그 무엇이 규범적 주장을 정당화하는 이유를 구성할 수 있겠는가? 그 이유가 어떤 사실로도 구성될 수 없다면, 그것은 어떤 비사실(nonfact)로 구성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을 진지하게 다루자면, 우리는 단순한 거짓(mere falsehood)이 아닌 어떤 것을 가정해야만 한다. (비록 많은 도덕 규칙이 엄밀한 의미에서의 비사실에 기반하지만, 예를 들어, 신이나 신의 명령에 대한 비사실) 또 어떤 다른 비사실이 이 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흄이 “사실의 문제”와 “관념들 사이에 관계의 문제”를 구분한 이후로(Hume 1975), 철학에서는 체험으로만 발견될 수 있는 경험적 사실(empirical facts)과, 논리나 의미에만 기반한 선험적 진리(a priori truths)를 구분하는 매우 강한 전통이 생겨났다. 그러나 논리적 혹은 분석적 진리란 것이, 직관에 항상 투명하지 않더라도, 어떤 삶의 방식이 다른 것에 비해 바람직하다거나 어떤 행동은 옳고 어떤 행동은 그르다는 주장을 함의(entail)하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우리가 지지 기반으로 허용 가능한 진술의 범위에 대한 제한을 유연하게 풀지 않으면, 그 어떤 규범적 진술도 전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제한을 유연하게 푸는 방법 중 하나는 누구라도 승인할 수 있을 정도로 온건한 규범적 주요 전제를 고르는 것이다. 모두가 종교적 믿음을 승인하던 지난 시대에는, 신의 명령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은 있었지만, 신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규범 자체가 이런 역할을 하는 전제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가 이미 도달했다고 낙관적으로 여길 수도 있을 이 탈종교 시대에는, 생물학이 밝혀주는 것과 같은 우리 자신에 관한 기본 사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지침을 주는 특권적 사실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생물학의 수많은 사실 중 우리가 어떤 것을 특권적 사실에 포함되는 것으로 선택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동물에 대한 생물학의 가르침을 우리는 최소주의 입장으로도, 확장주의 입장으로도 볼 수 있다. 최소주의자의 해석은 가능한 것에 대한 사실만을 고를 것이다. 사람은 1마일을 4분에 뛸 수 있지만, 맨몸으로 높은 빌딩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도덕성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도 금지하지도 않으므로, 우리가 가능한 것에 대한 자연적 사실에서 지침을 얻으려면, 이 자연적 사실들은, 가능한 것뿐 아니라, 가치 있는 삶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더 확장적인 특징을 가져야 한다. 가치 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우리 모두 동의한다면, 우리는 진화 이론, 심리학, 뇌과학에서 이에 적절한 새로운 지식을 찾고 싶어 할 것이다.

누군가 정치가들이 이런 지식을 고려하도록 잘 설득할 수만 있다면, 그런 지식이 얼마나 유용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여러 저작이 있다. 패트리샤 처칠랜드(Particia Churchland 2012)나 샘 해리스(Sam Harris 2011)의 최근 저서들이 바로 이런 시도를 보여주었다. 이 두 사람은 그들을 저지하려는 철학자들에도 개의치 않고 사실/가치 간극을 뛰어넘으려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자율성과 행복 같은 몇몇 기본 가치에 대한 보편적 합의를 가지며, 이런 가치를 실현하려는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생물학과 사회과학으로부터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한다(Nussbaum 2000).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은 건강도 나쁘고, 극단적 불평등은 여러 사회적 질병과 연관이 있다는 근거가 늘어나고 있다(Wilkinson and Pickett 2011; Atkinson 2015). 그렇지만,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사실을 전제한 논증은 생략된 논증(enthymeme)이고, 여기에 숨어 있는 평가적인 주요 전제는, 소위 반자연주의자들이 거부하는, 인간의 번성과 행복은 내재적으로 좋고, 고통과 강요는 내재적으로 나쁘다는 전제이다. 우리는 가치 진술을 정당화하는 시도를 아예 포기하거나 아니면 사실에서 규범이나 가치로의 추론을 금지하는 비자연주의 원칙(non-naturalist principle)을 완화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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