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목적의미론

2020.03.03 14:32

박제윤 조회 수:328

5. 목적의미론

Teleosemantics

 

 

데이비드 파피뉴 David Papineau / 최재유 역

 

 

표상의 문제

 

“목적의미론(Teleosemantics)”이란 하나의 표상이론(theory of representation)이다. 표상에는 서로 다른 많은 종류가 있다. 일부 표상들은 신념, 인식, 희망, 두려움 등과 같은 정신 상태(심적 상태(mental states))에 관한 것들이며, 다른 표상들은 문장, 지도, 도표, 그림 등과 같이 공적이며 비정신적인 항목들에 관한 것들이다.

모든 표상은 공통적으로 “진리 조건(truth conditions)”을 가진다. 어느 표상이든 세계가 어떠하다고 묘사한다. 그것은 그 표상 자체를 검증할 조건과 그렇지 않은 조건을 구분시켜줄 논리적 공간을 나눈다. 내가 “엘비스 프레슬리가 파리를 한 번 방문했다(Elvis Presley once visited Paris)”라고 주장할 때 또는 그와 대응하는 생각을 할 때, 나의 말, 나의 정신 상태 등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한 번이라도 파리에 갔을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만(if and only if, 필요충분조건으로) 참이다.

(“그림은 수많은 말의 가치를 지닌다.” 지각(perception)이나 지도에 의해서, 또는 표상을 묘사하는 다른 수단에 의해서 주장되는 무엇을 명확히 말하기란 언제나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그런 정신 상태는, 조밀하고 복잡한, 진리 조건을 결여하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표상은 수수께끼처럼 보일 수 있다. 하나의 상태가 어떻게 다른 상태를 나타낼 수 있는가? 내가 무언가를 말하거나 종이에 적을 경우, 나의 메시지는 음파나 흔적으로 전달되며, 내가 무엇을 믿거나 지각할 때, 내 생각은 내 머리 내부의 어떤 뉴런들 배열로 담긴다. 어떤 신비로운 힘이 이러한 일상의 물리적 배열로 하여금 더 많은 가능한 사건의 사태를 추론하고, 주장할 힘을 부여해주는가? 가령, 내가 “토성이 45개의 위성을 가진다”거나 “영국이 1966년에 월드컵에서 우승했다”는 것과 같이, 시간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태를 표상할 수 있게 하는가?

먼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은 이렇다. 표상의 물리적 담지자(physical vehicles of representation)가 위와 같은 진리 조건을 가진다고 해석된 덕분에 진리 조건을 얻는다. 예를 들어, “엘비스 프레슬리가 파리를 한 번 방문했다”는 영어 문장은, 영어를 말하는 화자가 그것을 어떠하다고 “이해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잘못된 임의적 생각은 아니며,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다. 지금은 더 세부적인 논의 없이, 일단 그 생각을 수용해보자. 문장이 특정 진리 조건을 의미한다는 해석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특정 유형의 “정신 상태”, 예를 들어, 엘비스가 파리를 한 번 방문했다고 생각하는 상태와 관련된 때문이라고, 가장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그러나 이런 이해는 그러한 정신 상태에 자체의 진리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게 만든다. 그리고 만약 그 대답이, 그러한 정신 상태가 “더 많은 정신 상태” 덕분에 해석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명백히 해명이 아니다. 우리는 (“본래적 지향성(original intentionality)”이라 흔히 불리는) 기원적 의미(original meaning)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는 정신 상태가, 다른 의미 상태의 도움으로 해석된 덕분에 의미를 갖는다기보다, 자체의 권리로서 의미를 가지는, 그런 종류의 상태를 설명하고 싶어 한다.

많은 철학자는 본래적 지향성은 의식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렇게 보았듯이, 그런 지향성은, 세계를 주관(subject)에 표상해주는 내재적 힘을 지닌 특별한 “의식적 상태”이다. 철학자들은 지각과 사고가 내성적으로 우리를 촉발하는 방식에 호소한다. 당신이 지금 당장 한 나무를 바라본다고 가정해보자. 그 방식이 당신의 감각 상태를 의식하는 본성에 내재되어 있지 않은가? 이렇게 반문하는 철학자들에 따르면, 그런 의식적 본성이 당신 주위에 나무가 있다는 것을 표상한다. 일부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에서, 예를 들어, “주식시장이 하락했다”는 것을 표상하는, 사고의 의식적 본성에 그 방식이 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은 매혹적이나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물론 의식 상태가 표상하지만, 그것이 의식적 속성 덕분은 아니다. 그러한 의식적 속성을 지닌 상태는 원칙적으로 다른 것을 표상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표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구체적 논의를 위한 쟁점이 아니다. 다른 곳에서도 그러한 논의를 했다(Papineau, 2016). 이 장에서 나는 표상을 의식에 근거하여 설명하는 대신, 표상을 “무의식적 속성 및 관계(nonconscious properties and relations)”에 의존한다는 대안적 접근을 탐구해보겠다. 이러한 접근은, 의식적 본성보다, 무의식적 속성 및 관계에 의해 의식적 상태의 표상적 힘을 설명하려 한다. 그리고 나아가서 무의식적 상태 역시 완전한 의미에서 표상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겠다.

논의를 전개하기 전에 예비적으로 지적해둘 것이 있다. 모든 표상이 범주적(categorical)이지는 않은데, 그 경우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조해서, 그 경우가 무엇이라고 말함으로써 제안되거나 수용된다는 의미에서이다. 예를 들어, 억측, 상상, 희망, 두려움 등등이 모두 표상인 것은 맞지만, 범주적이지는 않다. 그것들은 진리 조건을 가지며, 따라서 다른 표상처럼, 참/거짓으로 판명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표상들은,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 즉 주장, 믿음, 지각 등이 있는 방식으로, 즉 범주적으로 전달함으로써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아니다. 그러한 표상들은 단지 고려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다음에, 우리는 범주적 표상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겠다. 일단, 이것이 설명되고 나면, 아마도 비범주적 표상에 대한 설명은 그 기반에서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 범주로서의 표상

 

표상을 이해하는 열쇠는 그것을 생물학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다. 목적의미론의 기획에 따르면, 표상은, 생물학적 기능(biological function)이 그러그러한 여러 조건에 적합한 방식으로 행동을 안내하는, 생물학적 기능의 상태이다. 그러한 여러 조건은 표상 상태에 대한 진리-조건의 내용이다. 만약 그러한 조건이 만족된다면 그 표상이 참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거짓이다.

왜 그러한지 설명해보자. 케냐의 버빗 원숭이(vervet monkeys)는 표범, 독수리, 뱀 등에 대해 세 가지 다른 경보를 한다. 이러한 경보는 원숭이 집단 내에 특정 행동을 촉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세이파스, 체니, 말러 등이 그들의 고전적 논문(Seyfarth, Cheyney, and Marler 1980)에서 설명했듯이, 그 원숭이들은 “표범 경보에 나무로 달려가고, 독수리 경보에 위를 쳐다보며, 뱀 경보에 아래를 내려다보는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반응은 각 경보가 표상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해주는데, 각 경보의 진리 조건은 그 원숭이가 경보에 따라 하는 행동이 자신의 생존에 적합했을 환경이다.

이 경우를 루스 밀리칸(Ruth Millikan 1984)에 의해서 잘 알려진 용어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그 경보의 신호 발신자인 “생산자(produ- cer)”와, 경보에 반응하는 원숭이인 “소비자(consumer)”를 구분해보자. 목적의미론의 분석에 따르면, 경보의 진리 조건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생산자를 촉발하는 환경이 아니라, 소비자의 행동이다. 소비자 원숭이가 어떤 경보에 따라 위급한 독수리에 적절한 행동으로 반응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이것은 그 경보가 “독수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비록 생산자가, 정기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 “저공 비행기” 등에 대한 반응으로 같은 경보를 외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 신호의 진리 조건은, 생산자가 신호를 내도록 만드는 데에 있지 않으며, 소비자가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 예에서, 생산자는 하나의 유기체이고, 소비자는 다른 유기체이다. 그러나 만약에 생산자와 소비자가 동일 개인 내부에 있다면, 그 이야기는 똑같이 작동할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공적 신호와 마찬가지로, 정신 상태에 의한 표상 모델을 생각하게 해준다. 아래와 같이 납득될 만하게 가정해보자. [인간과 마찬가지로] 원숭이들 역시 시각 시스템(visual system)에 의해 “생산되고”, 운동조절 시스템(motor control system)에 의해 “소비되는”, 세 종류의 대뇌 상태(cerebral states)를 갖는다. 그러면 그 이야기는 똑같이 작동한다. 이러한 두뇌 상태들은, 원숭이들이 그러한 위협에 적절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구축된 사실 때문에, 표범, 독수리, 뱀 등에 각각 다르게 표상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표상에 대해 단순한 설명을 해볼 수 있다. 그것은 마법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러그러한 조건에 적절한 행동을 유발하는 생물학적 기능을 갖는 특정 상태의 문제일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설명은, 표상적 상태의 의미가 해석되는 방식에 의존한다는 직관적 생각을 지지한다. 표상이란, 그러한 환경을 알려줌으로써 소비자가 어느 환경에 적절한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의미에서, 소비자가 해석할 때마다 등장하는 무엇이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지적해야 할 것으로, 진행 중인 해석된 관념(idea)이 행위자에게 뭔가 그 이상의 정신적 상태를 촉발하는 표상적 관념은 아니다. 우리가 앞서 보았듯이, 만약 우리가 해석을 이러한 정신적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해석에 대한 호소는 불가피하게 퇴행에 빠지기 때문에, 본래적 지향성을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지만 현재의 제안은 이러한 퇴행에서 벗어난다. 이제 해석은 “행동하기”의 문제이며, 그 이상의 사고를 “생각해내기”의 문제가 아니다. 표상은 아래의 조건에서, 즉 만약 그 표상이 소비자로 하여금 특정 진리 조건에 따라 어떤 “사고(thought)”를 형성하기보다, 그런 조건에서 적절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한다면, 특정한 진리를 가진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사고”를 전제하지 않고서도 “표상”을 설명할 수 있다.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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