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신경철학

2020.03.03 14:29

박제윤 조회 수:52891

4. 신경철학

Neurophilosophy

 

 

패트리샤 처칠랜드 Patricia Churchland / 박제윤 역

 

 

서론: 신경철학이란?

 

“신경철학”은 마음의 본성에 관한 전통철학의 여러 의문에 대해, 신경과학의 발견이 주는 충격을 탐구한다. 신경철학은 세부적으로 신경과학과 임상신경학은 물론, 진화생물학, 실험심리학, 행동경제학, 인류학, 유전학 등 여러 관련 과학의 연구 성과로부터 나오는 데이터에 기초하여, 지식과 학습의 본성, 의사결정과 선택, 자기조절과 습관 등등의 의문에 접근한다. 또한 신경철학은 과학철학과 과학사 연구에서 나오는 교훈에 귀 기울인다. 그 교훈에 따르면, 실험과학이 새로운 관찰과 실험적 설명을 내놓게 되면서, 신비로워 보였던 혈액, 불, 감염성 질병 등의 본성이 덜 신비로워졌다(Thagard 2014).

다양한 수준의 뇌 조직 연구와 많은 종(species)의 신경계 연구에서 나오는 신경생물학의 엄청난 데이터의 축적은 최근에서야 이루어진 발전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신경과학이 실제로 1970년대 무렵까지 본격적 흐름을 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이 왜 최근까지 발달하기 어려웠는가?

뇌가 정신 기능(mental functions)에 관여한다는 것이 비록 오래전 임상적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뇌손상이 마음의 기능에 정확히 왜 영향을 미치는지는 이해되기 어려웠다. 그것은 뇌의 미시구조, 즉 뉴런(neuron)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뇌가 어떻게 그물망 및 시스템을 조직화하는지, 그리고 뉴런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여러 신경화학물질에 의해 일어나는지 등등이 아주 최근에서야 밝혀졌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에서야 신경세포의 구체적 모습이 카밀로 골지(Camillo Golgi)와 라몬 이 카할(Ramón y Cajal)에 의해 드러났다. 당시까지 뉴런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행동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지는 신비의 영역이었다.

반면에, 화학은 19세기 초 상당히 성숙한 과학으로 성장하였다. 1805년 돌턴(J. Dalton)이 밑그림을 그려줌에 따라서, 화학은 원자론의 기초 구성 원리에 의해 강화되었다. 이제 지구의 기초 원소가 물, 불, 흙, 공기가 아니라고 명확히 인식되었다. 대신에 지구의 원소들은 1880년대 멘델레예프(D. Mendeleyev)에 의해서 수소, 산소, 주석, 금 등등으로 주기율표에 따라 규정되었다. 반면, 신경과학의 경우 1950년대에서야 존 에클스(John Eccles)와 그의 연구원들에 의해서 신경세포들 사이에 억제성 연결(inhibitory connections)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 무렵 물리학은 이미 이론과 설명에서 훨씬 성숙되어, 원자의 내부 구조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조망해보건대, 효과적인 뇌영상 기술은 단지 20세기 말 20년 동안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미시적 수준인, 시냅스와 뉴런이 어떻게 소통하는지에 관한 많은 상세한 내용이 온전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신경 그물망(neural networks)의 기능과 그것의 동역학(dynamics) 역시 그렇다. 신경과학은 젊은 과학이다.

뇌의 기본 유닛들(units)이 세포막을 따라 흐르는 전압의 변화에 의해,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조율하는 화학물질에 의해 작동하므로, 그리고 그 유닛들이 맨눈으로 보이지 않으므로, 신경과학의 발달은 이론적으로나 실험적으로 물리학과 화학의 발전에 의존한다. 특히 신경과학은 물리학과 화학의 지식을 개발하는 도구들과 장치들, 예를 들어, 전자현미경, 미세전극, 핵자기공명, 단일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ies),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광학유전학(optogenetics) 등에 의존한다. 뉴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려면 전기에 관한 지식이 필요하며, 그런 지식은 19세기 초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의 발견이 있기 전까지 없었다.

일부 철학자들은 신경과학을 쓸모없는 것으로 명확히 전망한다. 그들은 신경과학에 많은 난제가 연이어 나타나자, 앞으로도 신경과학이 인지기능(cognitive function) 메커니즘을 결코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들이 그렇게 단정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신경계를 연구하는 과학이 아주 젊다는 명확한 역사적 초점을 일반적으로 놓치기 때문이다.

 

마음과 뇌 사이의 관계

 

“마음(mind)”과 “뇌(brain)”란 단어는 서로 명확히 구분된다. 그럼에도, 그러하다는 언어적 사실이 마음의 과정이 실제로 물리적 뇌의 과정이 아니라고 결정해주지는 않는다. (물과 H2O는 서로 다른 단어이지만, 그 두 단어들은 모두 정말로 같은 것을 가리킨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플라톤(Plato)에 의해 옹호되고, 데카르트(R. Descartes)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심지어 요즘의 토머스 네이글(Tomas Nagel)에 의해 방어되기도 했던, 철학적 사고에서 선호되는 이론은 “마음”과 “뇌”란 두 단어가 서로 구별되며, 따라서 그 과정 역시 다르다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접근은 “이원론(dualism)”, 즉 물리적인 것과 그와 아주 다른 정신적인 것을 끌어안는 “두 요소” 이론이다. 이원론에 따르면, 생각하고, 보고, 선택하는 등은 모두 비물리적 마음 또는 정신의 과정이다. 이원론자들로서 심/신 문제(mind/body problem)는, 물리적인 뇌 상태가 어떻게 전적으로 비물리적 영혼(soul) 상태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반면, 인기가 덜했지만, 유서 깊은 다른 전통에 따르면, 오직 뇌가 있을 뿐이다. 마음의 과정이란 물리적 뇌의 과정이며, 아직 뇌의 정확한 본성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접근은 “물리주의(physicalism)”로 알려져 있으며, 계승자로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홉스(T. Hobbes), 흄(D. Hume), 헬름홀츠(H. von Helmholtz) 등이 있다. 물리주의자들에게, 두 가지가 아니라 하나, 즉 뇌만 있으므로, 마음과 육체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어떤 문제도 없다. 마음이란 뇌가 작용한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뇌가 어떻게 학습하고 기억하는지, 뇌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보고 듣고 생각하게 해주는지, 그리고 뇌가 우리로 하여금 눈, 다리, 그리고 몸 전체를 어떻게 움직이게 해주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문제는 정신현상을 일으키는 뇌 메커니즘의 본성과 관련한다. 흥미롭게도 이원론자들 또한 밀접하게 관련된 여러 문제를 가진다. 예를 들어, “영혼 같은 무엇”이 어떻게 작용하여 우리가 학습하고, 기억하며, 볼 수 있고, 들으며, 생각할 수 있는지 등등이다.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물리주의자들은 활발한 연구 프로그램을 가지며 자신들의 의문에 대답을 내놓고 있는 반면, 이원론자들은 그와 비교할 만한 어느 연구 프로그램도 없다. 그들 누구도 영혼 같은 무엇이 어느 기능이라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볼 미력한 생각조차 가지지 못한다.

연구 프로그램으로서 신경철학은 헛된 전망일 수 있다. 만일 기억과 주의집중 같은 정신의 과정이 뇌의 과정이 아니라면 말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우리는 주의집중과 기억하는 영혼을 연구하고, 마치 데카르트가 가정했던 “영혼 같은” 무엇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찾아야만 한다. 그렇지만 지금 과학의 단계에서 넘치는 증거는, 모든 정신의 사건들(events)과 과정들(processes), 즉 시각 및 청각, 학습, 기억, 언어사용, 의사결정 등등이 모두 물리적 뇌의 사건이며 과정임을 말해준다. 그러하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실험은 적지 않다. 그러하다는 증거들이 무수한 관찰과 실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있으며, 어떤 반례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비록 우리가 어린 시절 발생했던 어느 사건을 회상하는 메커니즘을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회상이 뇌의 과정이라고 정당하게 확신한다. 이것은 마치, 마이클 패러데이가 당시 전자기(electromagnetism)의 본성을 엄밀하고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는 신비로운 현상이 아니라 자연의 물리적 현상이라고 확신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마음/뇌 의존성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발견 중 하나는 1960년대 출판된 분리뇌(split brain) 연구에서 나왔다. 그것은 약물-내성 간질(drug- resistant epilepsy)을 치료하기 위해 외과적으로 대뇌반구(cerebral hemispheres)를 절제한 환자들에 대한 연구였다. 뇌량(corpus callosum)은 좌우측 두 반구 사이를 연결하는 신경막(nerve sheet) 구조물이며, 그 수술로 좌우측 반구의 연결이 절단되었다. 그 수술의 목적은 간질이 한 반구의 발생점에서 다른 쪽 반구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여, 환자의 발작을 중단시키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분리뇌” 피검자 실험은 두 반구 사이의 정신적 삶도 함께 분리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측 반구는 좌측 반구가 모르는 것을 알았으며, 좌측 반구가 보지 못한 것을 보거나 결정하였다(Gazzaniga and LeDoux 1978). 그 실험이 제공하는 심/신 문제에 대한 함축은 명확했다. 만약 마음 상태가 뇌 상태가 아니라면, 뇌량의 절단으로 지식과 경험이 한쪽 반구 활동에 제약되는 것은 왜인가? 어느 도전적 이원론자가 그런 실험적 사실과 절충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하더라도(소수 이원론자가 이런 식으로 완강히 버티더라도), 그 단절 효과를 가장 잘 이해시켜주기에 적절한 설명이란 단지, 정신의 통합을 위해 필수적인 물리적 경로가 단절되어, 영혼 같은 무엇이 어찌할 수 없었다는 대답뿐이다. 마이클 가자니가(Michael Gazzaniga 2015)와 같은 선구적 분리뇌 연구자들은 그 실험에 대해 그렇다고, 즉 의식이 분리될 수 있다고 대답한다.

국소뇌손상(focal brain damage) 환자들에 대한 임상신경학자의 많은 관찰 역시 마음/뇌 의존에 무게를 실어준다. 국소뇌손상은 아주 특정한 인지기능만을 상실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예를 들어, 친숙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자신의 팔과 다리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거수경례나 인사로 손 흔들기 등의 지시적 행동을 수행하지 못한다. 다마지오 부부(Hanna and Antonio Damasio)는 아이오와 의대(University of Iowa Medical College)에서 거대한 프로젝트로, 유사한 위치의 뇌손상이 유사한 기능의 결과를 낳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가능한 많은 수의 체계적 기록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중요한 프로젝트는 뇌손상 연구를 단일 사례 연구에서 국소뇌손상과 그에 따른 능력에 미치는 결과를 더욱 체계적으로 이해하도록 해주었다.

해마(hippocampus, 대뇌피질 아래 작은 휘어진 구조물)의 양 외측(bilateral)이 손상된 일부 환자에 대한 연구는, 그들에게서 새로운 학습 능력의 심각한 상실(선행기억상실, antero-grade amnesia)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발견은 학습 및 기억과 해마 구조물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려는 거대한 연구 프로그램을 촉발시켰다(Squire, Stark, and Clark 2004). 치매 질환에 따른 기억 감소 역시 기억이 뉴런 감소와 관련되며, 나아가서 정신과 신경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주었다. 단일 뉴런 생리학과 함께 뇌영상을 이용한 주의집중 연구 역시 중요하다. 이러한 다양한 연구들에 따르면, (다른 신경망과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연결된) 적어도 세 가지 다른 해부학적 신경망이 다른 양상의 주의집중, 각성(alerting), 정위반사(orienting), 실행조절(executive control) 등과 관련된다. 더구나 이러한 세 기능은 더 나아간 세부적 연구, 즉 지칭하기(indicating)를 연구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이러한 세 기능과 각성 상태(awareness) 사이에 상당한 연관성이 있으며, 특히 표적 탐지하기(연속해서 방향 맞추기)와 각성 상태 사이에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Petersen and Posner 2012)는 연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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