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이 철학을 어떻게 말하는가-서문

2020.03.03 14:06

박제윤 조회 수:137

서론 생물철학

Biophilosophy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 David Livingstone Smith / 주민수 역

 

 

이 책은 내가 “생물철학(biophilosophy)”이라고 부르는 논문들의 모음집이다. 이 용어가 대부분 철학자들에게 낯설고, 또 과거 이 용어는 경우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내가 이 용어로 무엇을 말하려는지 그리고 그 용법을 어떻게 정당화할지에 관한 논의로 이 책을 시작하는 것은 적절하다. 이 논의는, 이 책의 제목이 시사해주듯, 생물학이 철학을 어떻게 말해주는지(shapes) 살필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주며, 생물철학이 자연주의(naturalism)를 위한 토대를 어떻게 제공하는지를 이해시켜준다.

“생물철학”은 “생물학의 철학(philosophy of biology)”과 쉽게 혼동될 수 있다. “생물철학자”와 “생물학의 철학자” 모두는 철학과 생물학 사이의 접촉면에 대해 관심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내가 약정으로 정의하듯이, 그 접촉면을 향해 그들이 지향하는 바는 각기 다르다. 생물학의 철학자들은 생물학을 생물학으로서 연구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생물학의 개념들, 생물학자들의 추론 유형들, 그리고 생물학적 개념들과 다른 과학 분야에 속하는 개념들 사이에서 얻어지는 개념적 관계들을 반성적으로 돌아본다. 누군가는 생물학의 철학을 높은 단계의 생물학적 이론화로 여길 수도 있다. 마치 생물학자들이 생물권(biosphere)의 경험적 풍경을 지도로 그려내기 위해 그들의 분야가 간직해온 이론적 개념들을 사용하듯이, 생물학의 철학자들은 생물학의 개념적 지형을 그려내고 수정하는 데 철학적 재원을 활용한다. 생물학자는 어떤 표현형(phenotype)이 그것을 지닌 유기체로 하여금 특정 환경에 적응하도록 지원하는지 여부를 질문하고 탐구할 수 있는 반면, 생물학의 철학자는 “표현형”, “적응(fitness)”, 그리고 “환경”이란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그리고 그러한 각각의 이해가 이론적 생물학(theoretical biology)을 위해 어떤 함의(entailments)를 갖는지 등을 질문하고 탐구할 수 있다. [즉, 그러한 개념적 이해로부터 어느 생물학 이론을 반드시 수락하거나 말아야 할지를 탐구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생물철학자들은 철학과 생물학 사이의 관계를 뒤집는다. 생물철학자들은, 생물학의 철학자들이 그러하듯이, 철학을 생물학을 위한 자원으로 활용한다기보다 생물학을 철학을 위한 자원으로 활용한다. 이런 점에서 생물철학은 생물학의 철학이 거울에 비친 뒤집힌 상이다. 내가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생물철학은 궁극적으로 생물학의 철학에 속하는 하위 학문이다.

어떤 철학자들은, 피설명항(explanandum)으로서 생물학과, 설명항(explanans)으로서 생물학 사이의 차이를 명시적으로 다룬다. 예를 들어, 폴 그리피스(Paul Griffiths)는 생물학의 철학을 세 종류로 나눈다. 하나는 과학철학(philosophy of science)에서 나온 일반적 고려를 생물학이란 특별한 경우에 적용한다. (예를 들어, 생물학 법칙이 존재하는지, 이것이 생물학적 설명의 본성에 어떤 함축(implications)을 갖는지 등을 질문한다.) 다른 종류는, 생물학의 독특한 개념적 쟁점들(또는 그리피스의 표현으로, “수수께끼”)을 다룬다. (예를 들어, 생물종은 종(kinds)인가 아니면 개별자(individuals)인가, 또는 그것들이 존재하는가 등의 질문들을 묻는다.) 그리피스의 셋째 종류의 생물학의 철학은, 그가 (“전형적(paradigmatic)”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는) “전통” 철학의 관심이라고 부르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생물학에 호소하는 것으로, 내가 “생물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된다.

그리피스의 용어 선택은 이상적이지 않은데, 왜냐하면 엄청나게 다른 두 종류의 철학적 기획을 “생물학의 철학”이란 단일 분류학적 우산 밑에 놓기 때문이다. 규정적으로, “x의 철학(philosophy of x)”이란 표현은 “x”가 무엇이든 그것에 관해 철학함(philosophize)을 나타내기 위해 x를 사용한다. “생물학의 철학”은 철학하려는 대상이 생물학임을 시사한다. 물론 이것이 그리피스가 전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미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반면에 “생물철학”은 지명된 “무엇의 철학”이 아니다. (“신경철학(neurophilosophy)”처럼) 그것은 철학함에 있어 생물학 정보에 근거한 접근법을 제안한다.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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